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병규(李炳珪)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병
  • 군번 : 9201319
  • 전몰일자 : 19501023

공훈사항

이병규 일병은 충청북도 청원군 구성면에서 출생하였다(출생 일자 미상). 그는 국군과 유엔군이 낙동강 선으로 철수를 거듭하고 있을 때인 1950년 7월 15일 육군에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받은 후 제1사단에 배치되었다.
이병규 일병이 전선에 투입될 무렵 사단은 함창에서 북한군을 저지하고 있었다. 이 일병이 소속된 사단은 8월 1일 야음을 이용하여 낙정리로 이동, 왜관에서 낙정리까지 도상거리로 42km 정면을 담당하는 방어진지를 구축하였다. 다음날 나루터에서 선박으로 낙동강을 도하 하여 3일 저녁까지 신진지의 점령을 완료하였다.
이 일병을 비롯한 장병들은 9월 25일 낙동리에서 도하를 완료하고 추격 작전의 대열에 들어서게 되었다. 부대 장병들은 선산-상주-보은을 거쳐 미원으로 진출하면서 낙동강 전선에서 소백산맥의 험한 준령을 따라 북으로 도주를 시도하던 북한군 패잔병을 추격하여 퇴로를 차단하고 소탕하였다. 이 일병과 사단 장병들은 충북 보은지구에 잔류하여 잔적을 소탕한 후 10월 7일 이동을 개시하여 안성-서울을 거쳐 10월 10일에는 임진강 북안의 고랑포로 진출하였다.
이후 이 일병이 소속된 제1사단은 신계를 점령한 후 신계 서쪽 2km 지점인 삼거리로부터 신계-수안 도로를 따라 진격 중이었다. 사단은 10월 15일 보·전 협동 부대의 선도 하에 일몰 직전까지 약 30km를 진격하여 수안 남쪽 하유리까지 진출하였다. 이 일병과 장병들은 10월 17일 38도선 돌파 이후 일일 진출 거리로서는 최고기록인 42km를 진격하여 평양 동남쪽 26km 지점 상원-율리 선을 점령하였다.
이병규 일병과 장병들은 통일된 조국을 꿈꾸며 임진강-토산-신계-수안-상원 방향으로 진격을 계속하였고, 10월 19일에는 사단과 함께 평양에 최선두로 입성하는 수훈을 세웠다. 이 일병과 사단 장병들은 충전된 사기로 순천을 경유 22일에는 개천에 도착하였으며 23일에는 안주를 향해 전진하기 시작하였다.
그는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앞장서서 압록강을 향해 진격을 계속하였다. 그러나 예상치 못하였던 중공군의 대병력이 기습공격을 감행해왔다. 그로 인해 이병규 일병은 1950년 10월 23일 영변 부근 전투에서 북한군의 총탄을 맞고 장렬히 전사하였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병규 일병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위패(37판-4면-072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모셔 살신보국정신을 기리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명비(012-ㅎ-034)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