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병규(李柄圭)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병
  • 군번 : 0345407
  • 전몰일자 : 19501213

공훈사항

이병규 일병은 전라북도 완주군 초포면에서 출생하였다(출생 일자 미상). 그는 6·25전쟁이 발발한 이후 국군과 유엔군이 북진작전을 진행 중이던 1950년 10월 중순 육군에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수료한 후 제1사단 제12연대에 배치되었다.
이병규 일병이 전선에 투입될 당시 연대는 임진강-토산-신계-수안-상원 방향으로 진격하고 있었다. 이 일병이 소속된 연대병력이 압록강을 향해 진격하고 있을 때 예상치 못하였던 중공군의 기습공격이 시작되어 다시 38도선으로 철수하였다. 10월 24일 박천-운산 도로와 태천-영변 도로의 교차지점인 용산동 남쪽 1km지점에서 북한군은 전차로 증강된 대대 규모의 병력을 배치하여 완강히 저항하고 있었다. 이 일병과 연대병력은 25일 아침 운산 공격을 개시하였다.
청천강 남쪽의 신안주 부근에서 재정비를 완료한 이 일병과 연대병력은 11월 24일 북한군 병참선의 요충인 태천을 목표로 공격을 개시하였다. 북한군은 연대의 진출을 저지하기 위하여 교량을 파괴시켰고, 또 도로상에는 도처에 120mm 박격포탄으로 만든 부비트랩을 매설하였다. 사단공병이 이를 제거하는데 다소 시간이 지연되었으나 북한군의 저항이 경미하여 저녁 무렵에는 태천을 남쪽과 동쪽에서 포위하게 되었다.
크리스마스 공세를 시작한 지 닷새째인 11월 28일 연대는 태천 외곽까지 진출하였으나 중공군의 공격에 밀려 박천 북쪽의 중막동-용산동 선을 점령하였다. 그러나 박천-용산동 일대를 고수하기 위하여 총력을 다 하였으나 계속적으로 증원부대를 투입하는 중공군의 공격을 저지하기에는 역부족이었고, 이병규 일병이 소속된 연대는 축차적인 지연전을 펼치면서 박천 남쪽의 동이동으로 철수하였다. 이어 이 일병과 장병들은 12월 7일 사리원에서 남천으로 이동하여 구월산 일대에서 활동 중인 1개 대대 규모의 패잔병을 소탕하였으며 이후에도 위천리, 구화리 일대의 축차적인 지연 진지를 점령하여 아군의 철수를 엄호하면서 지역내 패잔병 소탕작전을 실시하였다.
그는 조국을 우리 손으로 지켜야 한다는 굳은 의지로 전투에 임하였다.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최후까지 용감하게 싸웠던 이병규 일병은 1950년 12월 13일 구화리 일대 패잔병을 소탕하던 중 적이 쏜 탄환을 맞고 전사하였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병규 일병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위패(19판-1면-006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모셔 살신보국정신을 기리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명비(012-ㅋ-076)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