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병권(李秉權)

  • 군별 : 육군
  • 계급 : 하사
  • 군번 : 2901905
  • 전몰일자 : 19520706

공훈사항

이병권 하사는 충청남도 홍성군 장곡면에서 출생했다(출생 일자 미상). 그는 신생 대한민국과 자유를 지키고자 일어섰다. 이 하사는 1949년 3월 5일 제2여단 제18연대에 입대하여 복무하다, 동년 8월 1일 육군병참단이 창설되자 동 단으로 전속되었다.
6·25전쟁이 발발하고 북한군이 남진하자 육군병참단은 각 전투부대를 밀접히 지원하면서 6월 27일 용산을 떠나 안양-수원-평택을 거쳐 7월 5일 대전으로 이동했고, 7월 11일 김천을 거쳐 대구로 이동했다. 육군병참단은 7월 23일 포항 백원에 보급소를 설치하여 전선의 부대들을 적시적으로 지원했다. 또한 7월 30일 광주지구보급창 요원으로 마산에 마산보급소를 설치 운영하였고, 7월 31일 부산에 부산기지창을 창설하여 다량으로 입항되는 군수품의 원활한 하역과 전방 보급지원을 꾀했다.
그리고 8월 15일 서울지구보급창을 재편성하여 육군병참집적소로 개칭하고, 부산항에서 입하되는 막대한 군수품을 적사하고 관리하는 데 만전을 기했다. 동 단은 9월 5일 부산에서 묘지등록대를 예하부대로 창설하여 전선에서 속출하는 전사자를 원활하게 처리하도록 했다. 또한 9월 11일 제5, 6자동차대대를 창설하여 폭증하는 수송 수요를 충당하였으며, 9월 20일 제2폐품수집중대를 창설하여 각종 군수품 폐품을 수집했다.
인천상륙작전의 성공으로 국군과 유엔군이 반격으로 전환하여 9월 28일 수도 서울을 수복함에 따라 육군피복창이 부산에서 서울로 이동했다. 그리고 국군 부대들이 38도선을 돌파하여 북진하자 10월 3일 강릉에 강릉보급소가 창설되었고, 육군병참단도 전방 부대들을 보다 밀접히 지원하기 위해 10월 11일 부산에서 서울로 이동했다.
북진했던 국군과 유엔군이 중공군의 참전으로 남으로 후퇴하면서 재경 병참부대들은 부산으로 이동했다. 1951년 1월 23일 제179병참단이 창설되면서 이 하사는 동 단으로 전속되었다. 이 하사는 전방 부대들에 대한 보급에 진력함으로써 전투부대들의 전투력 유지에 크게 기여했다. 그는 1952년 7월 6일 보급품 수송 중 적 게릴라의 습격을 받고 교전 중에 적탄에 맞아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병권 하사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그의 위패(23판-14면-8731호)를 국립대전현충원에 모시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87-ㄷ-088)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 전사자 명부에는 제12병참단 소속으로 되어 있으나 동 부대는 존재하지 않았고, 유사한 제1, 제2병참단도 1952년 9월 27일 창설되었으므로 오기로 추정하여, 소속을 제1병참단의 전신인 제179병참단으로 조정함.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