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병권(李秉權)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병
  • 군번 : 0328986
  • 전몰일자 : 19500820

공훈사항

이병권 일병은 경상남도 진양군 사봉면에서 출생하였다(출생 일자 미상). 그는 6·25전쟁이 발발한 이후 국군과 유엔군이 낙동강 방어선에서 힘겹게 북한군의 공세를 저지하고 있을 때인 1950년 8월 초순 육군에 입대하여 기초 군사훈련을 수료한 후 제1사단 제15연대에 배치되었다.
이병권 일병이 전선에 투입될 당시 전선 상황은 8월 초순 북한군은 대구 공격을 준비하고 있었다. 이 일병이 소속된 연대는 대구를 중심으로 왜관 북쪽 328고지에서 낙정리까지 담당하여 방어하고 있었다. 적의 도하는 8월 3일부터 시작되었다. 주접근로를 담당한 연대는 낙정리 부근으로 도하하는 적 제13사단을 몇 차례 격퇴시켰으나, 적의 도하가 본격화되자 방어정면이 너무 넓은데다가 북쪽이 돌출되어 있어 방어선의 유지가 어려웠다. 이 일병과 연대병력은 5일부터 적 주력의 총공격을 받기 시작하였다. 8일 미명부터 제1사단은 적 제13사단과 제15사단의 도하공격을 받기 시작하였다. 제15연대는 일시 방어선이 돌파될 위기에 처하였으나 제12연대의 지원으로 위기를 타개하였으며 공군기의 지원하에 역습을 실시하여 9일 새벽까지 방어선상의 상실한 고지를 탈환하였다.
이 일병을 비롯한 연대병력은 8월 12일부터 다부동-군위 일대에서 대구를 방어하게 되었다. 13일 다부동 지역에 집결한 후 새로운 방어선을 점령하기 위하여 제15연대는 328고지 일대의 계획된 진지로 진출하였다. 이 무렵 북한군 제3사단 일부 병력이 약목 일대에서 도하하여 328고지로 공격하고 북한군 제15사단이 국군 제1사단보다 한발 앞서 유학산에 진출하여, 북한군 제13사단은 도로를 따라 신주막으로 진출 중인 연대 정면으로 접근하면서 일부 병력을 우회시켜 미쳐 연대가 병력을 배치하지 못한 674고지를 선점하였다. 이어 8월 15일부터 다시 총공격을 재개하였으나 전차 7대를 앞세운 북한군 연대 규모의 공격을 받아 복곡 일대로 물러나게 되었다.
그는 전투를 수행하는 동안 삶과 죽음의 감각을 느낄 겨를조차 없었다. 생과 사의 갈림길에서 죽음의 위협을 두려워하지 않고 최후까지 용감하게 북한군의 공격을 방어하던 이병권 일병은 1950년 8월 20일 다부동 전투에서 전사하였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병권 일병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위패(11판-2면-205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모셔 살신보국정신을 기리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명비(011-ㅇ-028)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