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병권(이병권)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병
  • 군번 : K1135251
  • 전몰일자 : 19510111

공훈사항

이병권 일병은 경상남도 밀양군 상내면 송문리에서 출생했다(출생 일자 미상). 그는 6·25전쟁 당시 국군과 유엔군이 38도선을 돌파하여 북진작전을 진행하던 1950년 9월월 초순, 경남 부산의 육군 제2훈련소로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수료한 후에 카투사(KATUSA)로 차출되어 미 제24사단에 배치되었다.
이병권 일병이 부대로 전입했던 10월 중순, 미 제24사단은 10월 14일 야간에 문산 일대에서 임진강을 도하하여 연안-해주-재령 방향으로 공격하고 있었다. 이후 10월 19일에 온정을 탈환하고, 10월 20일에 평양에서 미 제1기병사단을 초월하여 숙천-신안주 방향으로 공격하여 청천강 선을 확보했다. 유엔군의 1차 총공세(일명 '추수감사절 공세')가 10월 24일에 시작되었고, 이에 미 사단은 청천강을 도하하여 박천을 거쳐 10월 27일에는 정주까지 진격했으나, 우측의 부대가 중공군의 기습공격을 받고 후방이 차단되자 위협을 느끼고 다시 청천강 선으로 철수했다.
유엔군은 11월 24일에 2차 총반격작전(일명 크리스마스 공세)을 개시했다. 이에 미 제24사단은 선천까지 적과 접촉 없이 진출했으나, 갑자기 자취를 감추었던 중공군이 다시 기습적으로 공격하자 다시 청천강 선으로 철수했다. 이후 12월 6일에는 평양마저 포기하고 철수하여 13일에는 38도선 상의 김화-포천-의정부 축선에 배치되었다.
이곳에서 이병권 일병이 소속된 미 제24사단은 방어진지를 보강하고 있었다. 한편 대규모 병력을 이룬 중공군은 12월 31일 야간에 3차 공세(일명 신정공세)로 주공을 서울로 향했다. 미 제24사단 장병들은 중공군의 공격을 맞아 조직적으로 철수하며 적에게 최대한 피해를 주었다. 그리고 1951년 1월 4일에 의정부에서 서울을 거쳐 장호원 일대로 철수하여 양평 서측의 양자산(704고지)에 방어진지를 편성했다. 당시 북한군은 아군 후방으로 침투하여 교란작전을 적극적으로 실시하고 있었는데, 그가 소속된 중대는 1월 11일에 방어진지 후방에서 적 침투조를 발견하여 치열한 전투 끝에 격멸했다. 이날 그는 미군 장병들과 함께 용감하게 싸우다가 적의 총탄에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병권 일병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전쟁기념관의 전사자 명비(127-ㅊ-110)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