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병권(李炳權)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병
  • 군번 : 0659013
  • 전몰일자 : 19520419

공훈사항

이병권 일병은 1931년 2월 15일에 전라남도 나주군 산포면에서 출생했다. 그는 6·25전쟁 당시 유엔군과 공산군 사이에 지루한 휴전협상이 진행되던 1951년 7월 초순, 제주도 모슬포의 육군 제1훈련소로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수료한 후에 제6사단 제7연대로 배치되었다.
이병권 일병이 부대로 전입했던 8월 중순, 제6사단은 백암산을 좌우로 잇는 고지군에 배치되어 있었다. 당시 공산군이 휴전협상을 지연하면서 군사력 증강에만 몰두하자, 유엔사는 휴전협상을 촉진하기 위해 각 부대에 공세행동을 명령했다. 이에 제6사단은 유엔군의 작전지침에 의거 공세행동을 하기로 했다. 먼저 사단은 10월 13일부터 21일까지 9일 동안 공격하여 교암산을 탈취했고, 다음은 11월 17일과 18일 양일 간의 공격으로 949고지를 탈취하여 진지 전방의 금성천 분지를 확보했다. 이는 공산군이 휴전협상에 적극적으로 임하게 하였고, 결국은 군사분계선 위치 설정이 유엔군 의도대로 타결되었다.
이후 이병권 일병이 소속된 제6사단은 방어진지 보강과 수색작전 활동에 집중했다. 그리고 사단은 1952년 1월 10일부로 미 제9군단에서 배속해제 되어 양구 남쪽으로 이동하여 수인리, 추곡리, 공리 일대에서 야외기동훈련을 실시했다. 그는 야외기동훈련에 열심히 임하여 전기전술을 숙달시켰다. 사단은 3월 22일부로 미 제9군단에 재배속되어 김화, 거리실, 원남 일대로 이동하여 미 제40사단으로부터 방어진지를 인수하고, 4월 5일부로 미 제9군단에서 국군 제2군단으로 배속 전환되었다.
제6사단은 제2, 제7연대를 전방연대로 봉화산(477고지)-교암산(770고지)을 잇는 고지군에 주진지를 점령하게 하였고, 제19연대는 예비로 죽동에 위치시켰다. 이병권 일병이 소속된 제7연대는 교암산 일대를 점령하고 있었다. 전선은 한동안 소강상태를 유지했으나 4월 16일에 중공군 1개 연대 규모가 방어진지 정면의 575고지(교암산 동북쪽의 전초진지)를 공격하여 탈취했다. 이에 연대는 4월 18일까지 575고지를 탈취하기 위해 두 차례 공격했으나 실패했다. 이날 전투에서 그는 선두에서 용감하게 싸우다가 적의 총탄에 중상을 입고 후송되었으나, 회복하지 못하고 4월 19에 안타깝게도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병권 일병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화랑무공훈장(훈기번호 45602 육)을 추서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45-ㅇ-014)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