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병권(李秉權)

  • 군별 : 경찰
  • 계급 : 경사
  • 군번 :
  • 전몰일자 : 19511020

공훈사항

이병권 경사는 1925년 6월 26일 경기도 양주군 주내면에서 출생했다. (경찰 입문 일자 미상). 그는 전몰 당시 태전사 사령부 소속으로 재직 중 남원에서 전사했다.
1950년 9월 15일 인천상륙작전이 성공적으로 수행되고, 9월 16일 국군·유엔군의 총반격이 개시되자 전선이 단절된 북한군 제10사단 패잔병 약 3,400명과 남로당 제1지대 유격대 약 1,700명, 제3지대 유격대 약 450명, 이현상의 남부군 약 450명이 태백산맥 일대로 잠입했다. 이들은 경북 일원, 강원 북부지역, 충북 동부지역에 걸쳐 있는 태백산을 근거지로 하여 군 주요 수송로인 경부선·중앙선·포항선 철도 차단과 대구·청주를 비롯한 시가지 공격 등 후방교란을 획책했다. 이에 치안국 비상경비총사령부는 1950년 12월 6일 태백산지구전투경찰사령부(이하 태전사)를 설치하여 공비들을 토벌하기 시작했다.
태전사는 주력부대인 제200부대와 제207부대, 경북 전투경찰대, 강원 남부와 충북 동부 지역의 경찰서 병력, 주요보급로 경비를 담당하던 서울 제106대대로 편성되었다. 이 경사는 1950년 12월 6일 태전사 제200부대에 편성되어 이때부터 공비토벌작전에 참가했다. 1951년 1월 23일 1,000여 명의 공비들이 안동군 길안면 묵계동에 침투하자 제200부대가 출동하여 1월 27일까지 치열한 전투 끝에 공비 17명을 사살하고 7명의 포로를 획득하는 전과를 거두었다.
6월 12일 북한 유격대 300명이 덕유산에 침투하기 위해 지리산 삼도봉에 집결하고 있었다. 태전사는 제207부대와 제200부대를 6월 13일 오후 5시에 삼도봉지구에 투입했다. 오후 5시 20분에 공비 300여 명을 발견한 태전사의 부대는 곧바로 적을 공격하여 6월 18일까지 피·아 간 전투가 이어졌다. 공비들은 필사적으로 저항하다가 무주 방면으로 도주했다. 이 전투에서 태전사 부대는 공비 22명을 사살했다.
그 후 태전사 제207부대와 이 경사가 소속된 태전사 제200부대는 속리산 천황봉을 은거지로 하여 활동하고 있던 공비들을 소탕하기 위해 7월 9일부터 11일까지 소탕작전을 전개했다. 속리산 일대에서 활동하던 공비들의 규모는 150여 명이었는데 3일간의 치열한 전투 끝에 태전사 부대는 공비 5명을 사살했다.
남원 산내면에 600여 명의 공비들이 활동하고 있다는 정보에 따라 태전사 부대가 10월 11일부터 27일까지 남원군 산내면에서 공비소탕작전을 전개했다. 10월 20일 이 경사는 휘하의 병력을 지휘하여 공비소탕작전을 하던 중 적의 총탄에 맞아 장렬하게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병권 경사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전쟁기념관 전사자 명비(093-ㄷ-068)에 이름을 새겨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