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병국(李炳國)

  • 군별 : 육군
  • 계급 : 하사
  • 군번 : 9343449
  • 전몰일자 : 19530711

공훈사항

이병국 하사는 출생 일자 및 장소가 확인되지 않고 있다. 이에 소속 부대와 군번, 그리고 전사 일자 등을 고려하여 작성했다. 그는 6·25전쟁 당시 유엔군과 공산군 사이에 휴전협상이 진행되던 1951년 9월 중순, 제주도 모슬포의 육군 제1훈련소로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수료한 후 제11사단 20연대에 배치되었다.
이병국 하사가 부대로 전입해 왔을 때인 11월 중순, 제23연대는 11월 17일부로 수도사단으로부터 월비산 방어지역을 인수했다. 그런데 북한군 제9사단이 바로 다음 날인 11월 18일에 공격하여 24일까지 수차례 치열한 공방전을 펼쳐졌다. 월비산은 아군 입장에서 방어에 불리한 곳으로 더는 지킬 수가 없어서 결국은 월비산에서 철수했다. 이후 전선은 1952년이 되어서도 소강상태가 계속되었고, 장병들은 방어진지 보강에 힘썼다.
이병국 하사가 소속된 제20연대는 1952년 4월 15일에 거제도 포로수용소로 이동하여 경비임무를 수행하고, 7월 11일에 양양의 제11사단으로 다시 복귀하여 건봉산 일대의 방어지역을 담당했다. 이곳에서 제11사단은 향로봉-건봉산을 잇는 방어진지를 점령하고, 진지보강과 수색 및 매복작전에 집중하고 있었다. 유엔군과 공산군은 포로교환문제로 지루한 휴전협상을 진행하고 있었고, 전선에서는 휴전협상을 무산시킬만한 별다른 전투행위는 없었다. 이후 제11사단은 1953년 6월 1일에 방어진지를 제21사단에 인계하고, 화천 일대의 산양리, 하로곡, 동지화로 이동하여 제2군단의 예비가 되었다. 사단이 화천 일대로 이동한 것은 이 일대에 중공군의 동태가 심상치 않아 대비하는 차원에서 이루진 조치였다.
이병국 하사가 소속된 제20연대는 적의 공격에 대비해 방어진지를 강화하고, 수색작전을 적극적으로 실시했다. 그러던 중 이병국 하사가 소속된 소대는 1953년 6월 11일에 수색작전을 나갔다가 적 침투조를 발견하여 치열한 전투 끝에 격멸했으나, 이날 전투에서 그는 중상을 입고 강원도 화천의 제3이동외과병원으로 후송되었다. 이곳에서 그는 의료진들의 적극적인 치료에도 불구하고 끝내 회복하지 못하고 7월 11일에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병국 하사의 숭고한 희생정신을 기리기 위해 그의 위패(23판-14면-8730호)를 국립대전현충원에 모시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88-ㅍ-101)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