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병국(李炳國)

  • 군별 : 육군
  • 계급 : 하사
  • 군번 : 5100301
  • 전몰일자 : 19500703

공훈사항

이병국 하사는 경기도 장단군 군내면에서 출생했다(출생 일자 미상). 그는 대한민국 정부 수립에도 불구하고 정치 및 사회적으로는 여전히 혼란스러웠던 1949년 7월 중순, 서울 용산의 제19연대에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수료한 후 예하 대대로 배치되었다. 이후 연대는 1950년 4월 19일에 원주로 이동하여 제6사단에 예속되었고, 사단 예비로서 교육훈련에 주력하고 있었다.
제19연대는 6월 25일 새벽에 북한군이 전면 남침을 감행했을 때, 제19연대는 7시경에 비상을 발령했다. 그날은 일요일이라 상급부대 방침에 의거 대부분이 외출 및 외박 중에 있었으나, 다행히 이병국 하사가 소속된 제3대대 장병들은 외출을 하지 않고 영내에 대기하고 있었다. 이에 제3대대는 선발대로서 전방투입 출동명령을 받고, 오후 1시에 연대에서 보낸 20대의 차량에 분승하여 원주에서 출발했다.
이병국 하사가 소속된 제3대대는 6월 25일 저녁 8시에 춘천에 도착하여 이 지역을 책임지고 있는 제7연대와 협조하여 소양강 북쪽의 진지를 점령하여 적의 진출을 저지하고자 했다. 한편 제19연대 본대는 늦게 외출 및 외박에서 돌아온 장병들을 수습하여 기차로 원주에서 출발, 청량리를 거쳐 6월 26일 새벽 5시에 춘천에 도착했다.
이병국 하사가 소속된 제19연대는 6월 27일 새벽 5시부터 북한군으로부터 집중공격을 받고 3시간에 걸친 치열한 전투를 전개하여 적의 진출을 저지했다. 이때 사단에서는 제19연대를 춘천에서 홍천으로 증원하도록 조치했다. 이에 제19연대는 사단 명에 의거 오전 10시에 현 진지로부터 철수하여 차량이동으로 오후 7시 반에 홍천 북방의 말고개에 투입되어 홍천 방면를 방어하고 있던 제2연대를 증원했다. 제19연대 장병들은 S자형의 굴곡이 많은 말고개 지형을 활용하여 적 자주포에 대한 대전차 육탄공격으로 북한군의 진출을 저지했다.
이병국 하사가 소속된 제19연대는 6월 30일 오후 4시에 차량을 이용하여 원주로 철수했다. 이후 연대는 다시 7월 1일 밤 12시에 이천으로 이동하여 방어진지를 점령했다. 다음 날인 7월 2일 오전 7시에 북한군 2개 대대 규모의 공격을 2시간에 걸친 치열한 전투 끝에 격퇴했으나, 북한군은 이내 병력을 증강하여 연대 규모로 강력한 포격을 가하며 공격했고, 전투는 7월 3일까지 계속되었다. 이날 전투에서 그는 선두에서 용감하게 싸우다가 적의 포격에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병국 하사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그의 위패(33판-7면-059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모시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38-ㅇ-034)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