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병국(이병국)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병
  • 군번 : K1106695
  • 전몰일자 : 19510501

공훈사항

이병국 일병은 1930년 6월 27일에 경상남도 부산시 진구 부전동에서 출생했다. 그는 6·25전쟁 당시 국군과 유엔군이 낙동강방어선에서 반격하여 38도선을 돌파하고 청천강 선까지 진격했던 1950년 10월 하순, 경남 부산의 육군 제2훈련소로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수료한 후 카투사(KATUSA)로 차출되어 미 제8군사령부로 배치되었다가 부대조정에 의거 미 제7사단으로 전속되었다.
이병국 일병이 부대로 전입했던 11월 하순, 미 제7사단은 함경남도 이원으로 상륙하여 풍산-갑산을 거쳐 혜산진을 점령하고 잔적 소탕작전을 실시하고 있었다. 이 무렵에 대규모 병력을 이룬 중공군이 장진호로 진격하는 미 제1해병사단을 포위하고, 원산까지 진격하여 미 제10군단의 후방을 차단했다. 이에 사단은 11월 27일에 혜산진에서 철수하여 함흥으로 이동, 흥남항 외곽방어선을 점령하고 있던 미 제3사단과 함께 흥남철수작전을 지원했다.
미 제7사단은 12월 21일에 미 제3사단의 엄호 하에 흥남항에서 철수하여 부산항에 도착했다. 이어 대구로 이동하여 부대정비를 하고 있었는데, 중공군이 12월 31일 야간에 총공세를 실시하여 위기가 도래하자, 1951년 1월 7일 북상하여 평창 남서쪽, 그리고 원주 동남쪽 백운산 고지군을 점령하였다. 이곳에서 사단은 2월 11일에 시작된 중공군의 2월 공세를 저지하고 반격으로 전환했다.
이병국 일병이 소속된 미 제7사단은 2월 21일에 제천-평창 축선으로 공격하여 평창 북쪽의 대미산을 탈취했다. 그리고 3월 5일부터 현리-인제 축선으로 공격하여 3월 말에는 현리 직전의 방태산까지 진출하였다. 이곳에서 군단계획에 의거 양구 방향으로 공격 방향을 전환하여 4월 21일에 양구를 탈환했다. 이병국 일병이 소속된 제31연대는 사단의 예비로서 홍천 일대에서 대기하다가 4월 22일 야간에 소양강을 도하하여 전방부대인 제17연대와 교대하기로 했다. 이날 공산군의 4월 공세로 진격할 수가 없어 다시 소양강을 건너 철수했다. 이후 사단은 5월 1일부로 미 제9군단에 배속 전환되어 홍천 서남쪽으로 이동했다. 이병국 일병이 소속된 연대는 부대 이동 중 적 침투부대의 습격을 받아 치열한 전투 끝에 격멸했다. 이날 그는 미군 장병들과 함께 용감하게 전투하던 중 적의 총탄에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병국 일병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그의 위패(33판-40면-21913호)를 국립서대전현충원에 모시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128-ㄷ-015)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