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병국(이병국)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병
  • 군번 : K1148454
  • 전몰일자 : 19510519

공훈사항

이병국 일병은 1926년 10월 7일에 경상북도에서 출생했다. 그는 6·25전쟁 발발 이후 국군과 유엔군이 낙동강방어선에서 반격준비를 하던 1950년 9월 중순, 경남 부산의 육군 제2훈련소로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수료한 후 카투사(KATUSA)로 차출되어 미 제7사단에 배치되었다.
이병국 일병이 부대로 전입했던 10월 23일, 미 제7사단은 부산에서 원산 상륙작전을 준비하고 있었다. 이후 사단은 10월 29일에 부산에서 출항하여 11월 8일에 함경남도 이원으로 상륙하여 혜산진까지 점령했다. 이 무렵에 대규모 병력을 이룬 중공군이 장진호로 진격하는 미 제1해병사단을 포위하고, 원산까지 진격하여 미 제10군단의 후방을 차단했다. 이에 사단은 11월 27일에 혜산진에서 철수하여 함흥으로 이동, 함흥항 외곽방어선을 점령하여 흥남철수를 지원하고, 12월 21일에 미 제3사단의 지원을 받아 흥남항에서 철수하여 부산항을 거쳐 대구로 이동하여 부대 정비를 했다.
중공군이 1950년 12월 31일 야간에 총공세를 실시하여 위기가 도래하자, 사단은 1951년 1월 7일 북상하여 평창 남서쪽, 그리고 원주 동남쪽 백운산 고지군을 점령하였다. 이곳에서 사단은 2월 11일에 시작된 중공군의 2월 공세를 맞아 중공군에게 큰 피해를 입히고 진출을 저지했다.
미 제7사단은 2월 21일에 제천-평창 축선으로 공격하여 2월 말에는 평창 북쪽의 대미산을 탈취했다. 그리고 3월 5일부터 현리-인제 축선으로 공격하여 3월 말에는 현리 직전의 방태산까지 진출하였다. 이곳에서 군단계획에 의거 사단은 양구 방향으로 공격방향을 전환하여 4월 21일에 양구를 탈환했다. 이병국 일병이 소속된 제31연대는 사단의 예비로서 4월 22일 야간에 소양강을 도하하여 전방부대인 제17연대와 교대하고자 했으나, 이날 공산군의 4월 공세로 다시 소양강을 건너 철수했다.
이병국 일병이 소속된 미 제7사단은 5월 1일부로 미 제9군단에 배속 전환되어 홍천 서남쪽으로 이동하여 반격작전으로 홍천에서 춘천 방향으로 공격했다. 이 시기에 사단은 5월 16일부터 시작된 공산군의 5월 공세를 맞아 다시 홍천 남서쪽 일대로 철수했다. 그는 5월 19일에 적으로부터 공격을 받고 전투하던 중 적의 총탄에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병국 일병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전쟁기념관의 전사자 명비(128-ㅈ-020)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