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병구(李炳九)

  • 군별 : 육군
  • 계급 : 하사
  • 군번 : 0665983
  • 전몰일자 : 19521110

공훈사항

이병구 하사는 1930년 6월 7일에 전라남도 장흥군 장흥읍에서 출생했다. 그는 6·25전쟁 당시 유엔군과 공산군 사이에 포로교환문제 등으로 휴전협상이 진행되던, 1951년 11월 23일에 제주도에 위치한 육군 제1훈련소로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수료한 후 제5사단 제27연대로 배치되었다.
이병구 하사가 부대에 배치될 당시의 전황은 국군과 유엔군이 캔자스(Kansas)선(임진강-연천-화천저수지-양양을 잇는 선)과 그 북방에서 중공군 및 북한군과 공방전을 벌이고 있던 상황이었다. 한편 중공군의 1951년 5월 공세 이후 공산군 측과 유엔군 측은 군사작전으로는 전쟁에서 승리하기 어렵다는 인식을 하게 되면서 휴전을 모색하기 시작했다. 이에 따라 7월 10일 최초로 휴전회담이 열렸고, 11월 27일 회담에서 양측은 현 접촉선을 휴전선으로 합의했다. 이에 양측은 대규모작전을 자제했고, 전쟁은 휴전회담에서 주도권을 쥐기 위한 작전과 전선 개선, 그리고 휴전 후 방어에 유리한 지형을 확보하기 위한 고지쟁탈전이 치열하게 전개되는 양상으로 변모되었다.
제5사단은 육본직할로 강원도 양양 지역에서 수색정찰과 매복작전을 병행하다가, 1952년 1월 13일부로 제1군단에 배속 전환되어 동해안 거진으로 이동하여 부대 재편성 및 교육훈련에 집중했다. 그 후 사단은 1월 23일부터 제11사단의 전선을 인수하여 554고지-351고지-감호 일대를 잇는 방어선을 담당하게 되었다. 제36연대를 좌측 전방, 제35연대를 우측 전방에 배치하고 이병구 하사의 제27연대는 예비로 수동리 일대에 집결했다. 당시 사단 전초진지는 예비연대에서 투입해서 작전을 실시했다.
정면의 적은 북한군 제47, 제9사단으로서 적은 월비산을 확보한 상태에서 그 남쪽의 351고지를 비롯한 제5사단의 전초진지와 주저항선을 공격하기 위해 호시탐탐 기회를 엿보고 있었다. 북한군은 소규모 수색정찰 활동을 하는 등 전선은 7월 초순까지 소강상태가 지속되었다.
마침내 적 제9사단은 7월 10일 대규모의 공격준비사격에 이어 351고지를 집중 공격했다. 적의 기습공격에 아군은 적에게 同 고지를 탈취당했으나, 제27, 제35연대를 번갈아 투입하며 3일간 적과 치열한 공방전 끝에 결국 이 고지를 탈환했다. 사단은 11월 10일 현 전선을 제15사단에 인계하고 간성으로 이동했다. 이병구 하사는 분대원을 진두지휘하며 간성으로 부대이동 중 11월 10일 적 침투부대의 총탄에 맞아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병구 하사의 공적과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하여 전쟁기념관 전사자 명비(034-ㄲ-097)에 이름을 새겨, 그의 나라 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