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병구(李炳九)

  • 군별 : 육군
  • 계급 : 이병
  • 군번 : 0158921
  • 전몰일자 : 19510103

공훈사항

이병구 이병은 서울특별시 영등포구 도림동에서 출생했다(출생 일자 미상). 그는 6·25전쟁 발발 후 중공군의 참전으로 대한민국이 다시 위기에 처하자 1950년 12월 초순경 입대하여, 대구에 위치한 제1훈련소에서 기초군사훈련을 수료한 후 제5사단 제36연대로 배치되었다.
이병구 이병이 부대에 배치될 당시 전황은 북진을 계속하던 유엔군과 국군은 중공군의 두 차례에 걸친 기습공격에 의해 후방이 차단되어 다시 38도선으로 철수하고 있던 상황이었다. 제5사단은 1950년 12월 2일 잔적의 거점인 춘천을 목표로 공격하여 임무를 달성하고 북으로 도주하는 적을 추격하여 화천 부근의 잔적을 소탕했다.
그 후 사단은 상급부대 명에 의거 전방지역으로 투입되면서 12월 5일경 17번 국도상의 춘천 지역에 배치되어 평양-서울 간 도로의 동측방에 대한 엄호작전을 실시했다. 사단 정면의 적은 북한군 제25연대와 교도대대로서 춘천 북방 촛대봉-봉덕산-가덕산을 잇는 선에서 저지선을 설치했다. 북한군 제29연대는 화천으로 이동하여 집결 중이었다. 이러한 북한군은 중공군의 남하에 힘을 얻어 교착상태의 전투가 지속되었다. 사단은 엄호작전을 실시한 후 12월 10일부로 춘천 동북방 탑두울-배후령 간을 점령하여 방어준비를 실시했다.
당시 이병구 이병이 소속된 제36연대는 가평 북쪽의 지암리 일대, 그리고 제27연대는 청평 동쪽의 호명산 일대에 배치시키고, 제35연대는 사단 예비로서 북한강 서쪽의 송암리 일대에 배치시켜 중공군의 공세에 대비하고 있었다. 마침내 중공군은 1951년 1월 1일 새벽에 제3차 공세(신정공세)를 개시하여 사단의 후방을 차단했다. 1월 2일 밤에는 좌인접 제2사단 지역을 돌파한 적이 후방으로 진출함으로써 퇴로를 이중으로 차단하면서 사단은 적들에게 포위되었다.
그러나 제5사단은 포위망을 돌파하여 가평을 거쳐 문막 동쪽으로 이동하여 방어 배치하는 데 성공했다. 이병구 이병은 1951년 1월 3일 가평 북쪽의 지암리 일대의 방어진지에서 중공군 포위망을 돌파하려고 교전 중 적탄에 맞아 장렬하게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병구 이병의 공적과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하여 그의 유해(11묘역-7판-595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안장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32-ㅇ-003)에 그 이름을 새겨, 그의 나라 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