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병구(李秉九)

  • 군별 : 육군
  • 계급 : 이등중사
  • 군번 : 0690083
  • 전몰일자 : 19530523

공훈사항

이병구 이등중사는 전라북도 무주군 안성면에서 1925년 1월 8일에 출생하였다. 그는 6·25전쟁으로 조국이 위기에 처하자 나라와 자유를 지키기 위해 분연히 일어섰다. 이 이등중사는 1952년 1월 31일에 입대한 후 제주도 모슬포에 있는 제1훈련소에서 기초군사훈련을 받고 제8사단 제21연대에 배치되었다. 이 이등중사의 부대 전입 이후 제8사단 제21연대 장병들은 공비토벌작전 종료 이후 1952년 3월에 다시 미군 제10군단에 배속 전환되었다. 후에 강원도 인제군 서화면으로 이동하여 미 해병대 제1사단의 노전평 북방 854고지, 812고지 작전지역을 인수했다.
제8사단은 북한군과 대치한 상황에서 진지 보수에 치중했다. 이 이등중사가 소속된 부대는 1952년 9월 21일 북한군 제45사단의 공격을 받았다. 이에 일시적으로 854고지를 점령당하기도 했지만 미 해군, 공군의 화력지원을 받아가며 1952년 9월 21~22일간 북한군 제45사단의 공격을 저지할 수 있었다. 이후 이 이등중사가 소속된 부대가 포함된 제21연대는 1952년 10월 25일 강원도 김화군으로 이동하여 수도사단으로부터 수도고지 일대의 작전지역을 인계했다.
수도고지는 1952년 9월간 국군수도사단과 중공군 제34사단, 제35사단 간에 수차의 공방이 벌어졌던 해발 600m 능선상의 고지이다. 수도고지는 그 위치나 규모로 보아 다만 전초에 불과했다. 오히려 수도고지는 적 주저항선의 700m 고지들보다 낮아 적의 감제관측을 허용하여, 주간에는 진지공사나 보급추진 등이 불가능한 곳이었다.
그러나 수도고지는 피아간의 전략적 요충지로 여겨져 주요 결전장이 되어 왔고 이러한 연유로 결코 상실해서는 안 될 고지로 인식되어 동굴 진지로 구축되었다. 이에 이 이등중사는 수도고지의 진지공사 및 수색작전을 지휘하였다. 당시 수도고지 전선은 1952년 10월 이후 소강상태를 보였다. 그러나 이러한 소강상태는 1953년 5월 13일 중공군의 수도고지 공격으로 종료되었다.
제8사단 장병들은 당시 수도고지의 주저항선을 담당하고 있었다. 이에 대해 중공군은 연막탄과 전차 및 포병지원을 받으며 수도고지 진내까지 공격해왔다. 제8사단 제21연대 장병들은 진내에서 중공군과 백병전을 벌이게 되었다. 이 이등중사는 1953년 5월 23일 수도고지 능선의 진지를 사수하기 위해 전투 중 적의 총탄에 맞아 안타깝게도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병구 이등중사의 공적과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하여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64-ㅊ-044)에 이름을 새겨, 그의 나라 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