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병광(李炳光)

  • 군별 : 육군
  • 계급 : 이병
  • 군번 : 0626288
  • 전몰일자 : 19511002

공훈사항

이병광 이병은 전라북도 부안군 하서면에서 출생했다(출생 일자 미상). 그는 6·25전쟁 당시 국군과 유엔군이 중공군의 공세로 38도선 일대에서 일진일퇴를 거듭하던 1951년 7월 초순경 입대하여, 제주도에 위치한 육군 제1훈련소에서 기초군사훈련을 수료한 후 제5사단 제35연대로 배치되었다.
이병광 이병이 부대에 배치될 무렵 전황은 국군과 유엔군이 캔자스(Kansas)선(임진강-연천-화천저수지-양양을 잇는 선)과 그 북방에서 중공군 및 북한군과 공방전을 벌이고 있던 상황이었다. 공세로 전환한 美 제10군단은 화천저수지-해안분지-향로봉-거진을 연결하는 新캔자스선을 확보하기 위해 공격을 개시했다. 이때 제5사단은 1951년 6월 17일 목표인 서화리 일대의 고지들을 점령하면서 장평-봉화봉을 잇는 캔자스선 진격작전을 완료한 후 7월 말까지 재편성과 부대훈련에 전념하고 있었다.
8월에 접어들면서 美 제10군단은 南으로 만곡부를 이루는 전선을 北으로 밀어 올리기 위해 해안분지(펀치볼) 확보작전을 실시했다. 이에 제5사단은 8월 31일 가칠봉 북쪽의 1,211고지와 서희령을 점령하기 위해 공격을 개시했다. 최초 제27연대가 주력으로 사단목표인 가칠봉 동북쪽 능선과 서희령(西希嶺)을 점령했으며, 9월 5일 전 작전지역을 감제 가능한 1,211고지를 목표로 공격하였으나 진전이 없었다. 다음날 이병광 이병이 소속된 제35연대 각 대대가 제27연대를 증원하여 9월 9일에 1,211고지를 최초 점령하였으나 적 역습으로 가칠봉으로 철수했다.
그 후 사단은 가칠봉 부근의 진지를 강화하다가 9월 17일에 제35연대로 주력을 전환하여 1,211고지를 공격했으나 실패했다. 지금까지 2개 연대가 교대로 공격을 펼쳤으나 돌파구를 열지 못하자 사단예비인 제36연대를 투입하기 위해, 제35연대가 9월 19일부터 22일까지 1,211고지를 계속 공격하는 가운데 제36연대가 전방으로 추진되었다. 제35연대는 9월 23일부터 운천리에 집결하여 약 5일간의 부대정비를 완료한 후 9월 28일 10시를 기해 공격을 재개하였으나 1,211고지 서남능선의 무명고지를 점령하고 진척이 없었다. 이어서 제36연대가 10월 1일에 1,211고지를 탈취하고 재편성했으나, 적의 강력한 역습으로 1,211고지의 아군의 방어진이 돌파되면서 포위되기 시작하자 사단은 철수할 수밖에 없었다. 이병광 이병은 10월 2일 분대원과 함께 1,211고지에서 철수 중 적탄에 맞아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병광 이병의 공적과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전쟁기념관 전사자 명비(033-ㅌ-096)에 이름을 새겨, 그의 나라 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