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병관(이병관)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등중사
  • 군번 : 2502016
  • 전몰일자 : 19501029

공훈사항

이병관 일등중사는 1924년 6월 25일에 서울특별시 성동구 신당동에서 출생했다. 1945년 일제가 패망하면서 광복을 맞이했으나 정부수립 준비로 혼란스러웠던 1948년 7월 23일, 그는 충남 온양의 제13연대로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수료한 후 예하 대대로 배치되었다. 이후 제6사단이 청주에서 원주로 이동할 때, 그는 제13연대에서 제6사단 수색대로 전속되었다.
제6사단은 1950년 6월 25일 새벽에 북한군의 기습공격을 받고 신속히 전방 방어진지에 투입되었다. 사단은 춘천과 홍천 북방에서 북한군 공격을 3일간이나 지연하고, 6월 29일에 철수하여 이후 7월 한 달 동안 충주-문경-함창 축선에 지연전을 수행하고, 8월 3일에 용기동∼교안동∼307고지를 연하는 능선의 낙동강 선에 방어진지를 점령했다. 이곳에서 북한군의 8월 공세와 9월 공세를 격퇴하고 반격으로 전환했다.
국군과 유엔군은 9월 16일부터 전 전선에서 반격을 개시했다. 당시 제6사단은 정면의 조림산에서 강력히 저항하는 북한군을 섬멸한 후 9월 23일부터 추격했다. 사단은 함창-충주-원주-춘천 방향으로 공격하여 10월 5일에는 춘천 북방의 모진교에서 38도선을 돌파했다. 이후 사단은 10월 8일에 화천을 점령하고, 김화-금성-신고산-덕원-마식령-양덕 방향으로 북진하여 10월 19일에 성천을 점령했다. 그리고 10월 21일부터 진격 방향을 바꾸어 순천-개천-희천 방향으로 공격했다. 이병관 일등중사가 소속된 수색소대는 적진으로 침투하여 적정을 수집하여 보고하거나 적 지휘소 및 보급소를 타격하는 임무를 수행했다.
유엔군은 10월 24일부터 압록강을 향한 1차 총공세(일명 추수감사절 공세)를 펼쳤다. 이때 제2연대는 10월 24일에 온정리를 거쳐 압록강 변의 벽동(온정리 서북방 75㎞) 방향으로 공격했다. 이때 동림산(1165m) 기슭에서 매복 중이던 중공군(제40군)으로부터 기습공격을 받고 후방이 차단되는 등 위기상황에서 10월 26일에 후방으로 철수하기로 했다.
이병관 일등중사가 소속된 수색소대는 압록강을 향해 진격할 때는 공격을 선도했으나, 중공군에게 후방이 차단된 상황에서는 포위망 돌파가 급선무였다. 그들은 포위망을 돌파하다가 수시로 적의 공격으로 위기에 처했다. 그러던 중 10월 29일에는 중대 규모의 적으로부터 공격을 받고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다. 이날 그는 소대선임하사로서 적진에서 용감하게 전투하던 중 적의 총탄에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병관 일등중사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그의 위패(23판-4면-1271호)를 국립대전현충원에 모시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115-ㅁ-076)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