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병관(李炳寬)

  • 군별 : 경찰
  • 계급 : 경사
  • 군번 :
  • 전몰일자 : 19511204

공훈사항

이병관 경사는 1927년 6월 8일 전남 담양군 봉산면에서 출생했다. (경찰 입문 일자 미상). 그는 전몰 당시 전남도경 경찰국 소속으로 재직 중 담양군 백아산에서 전사했다.
1950년 6월 25일 전쟁이 발발하자 치안국은 전시 비상경비총사령부 체제로 전환했고, 전남경찰국도 전투태세를 갖추었다. 북한군은 6월 28일 서울을 점령하고, 7월 4일 한강방어선을 돌파하여 남진했다. 전남도경 경찰국은 군 주요보급로 경비, 피난민의 이동 통제·구호, 오열 색출에 만전을 기했다.
한강방어선을 돌파한 북한군이 계속 남진하자, 전남경찰국은 각 서(署)에서 15명씩을 차출하여 전북경찰국에 배속하고, 나머지 병력으로 전남전투경찰부대를 편성했고, 이 경사도 전남경찰국 병력과 함께 전투경찰로 재편되었다. 북한군 제6사단은 호남지역에 투입되어 7월 16일 금강을 도하, 곡성-전주로 남진했다. 이에 육군본부는 7월 17일 서해안지구 전투사령부를 설치하고, 전북·전남 편성관구사령부와 신편 제7·제5사단, 경찰 등을 배속하여 지역방어임무를 수행하도록 했다.
북한군 제6사단은 7월 20일 전주를 점령하고 잠시 부대를 정비한 후 7월 22일 공격을 재개했다. 북한군 제13·제15연대는 국군과 경찰의 저항을 뚫고 7월 23일 장성, 광주를, 7월 24일 화순·나주·장흥을 점령하고 보성 방면으로 진출했고, 제1연대는 24일 남원을 점령 후 구례-순천으로 남진했다. 이에 전남편성관구사령관은 순천·광산 인근 경찰과 각지에서 물러난 경찰을 3개 부대로 재편하여 적을 저지하도록 했다.
인천상륙작전에 힘입어 국군과 유엔군이 9월 16일 총반격 작전을 개시하여 미 제9군단 예하 미 제2·25사단은 전주(27일), 남원(28일), 군산·강경(30일)을 차례로 탈환했다. 도주로가 차단된 북한군 패잔병들은 지리산 일대의 산악지대로 잠입하여 게릴라전을 전개했다. 전남경찰은 게릴라 소탕작전을 위해 국군 제11사단(1950년 10월 14일-1951년 4월 6일), 제8사단(1951년 4월 6일-5월 11일)에 배속되어 공비세력을 와해하는 데 기여했다. 그 후 치안국 비상경비총사령부의 공비섬멸 작전지침(1차: 1951.3.10-4.10, 2차: 1951.4.15-5.5, 3차: 1951.7.15.-8.15)에 따라 전남도경 소속의 경찰은 이 작전에 참가하여 많은 전과를 거두었다. 그 후 이 경사는 12월 4일 휘하의 병력과 함께 백아산에 출동하여 공비들을 소탕하다가 적의 총탄에 맞아 장렬하게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병관 경사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전쟁기념관 전사자 명비(100-ㄴ-016)에 이름을 새겨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