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병곤(李炳坤)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등중사
  • 군번 : 9200375
  • 전몰일자 : 19510518

공훈사항

이병곤 일등중사는 경상북도 금릉군(現 김천시) 감천면에서 출생했다(출생 일자 미상). 그는 6·25전쟁 발발 후 국군과 유엔군이 낙동강 선으로 철수를 거듭하고 있을 때인 1950년 7월 15일 입대하여 제2교육대에서 기초 군사훈련을 수료한 후 교육대 조교요원으로 자충되었다.
이병곤 일등중사가 제2교육대에 조교 요원으로 남게 될 무렵 전황은, 국군과 유엔군이 낙동강방어선에서 북한군 8월과 9월 공세를 맞아 영천이 함락되는 등 위기에 처해 있었던 상황이었다. 이러한 상황 하에서 그는 신병교육에 전념하면서 교육대 방호 임무도 병행했다.
한편 국군은 1950년 7월 초순 부대 재편성 시 제5사단을 해체하고 10월 8일에 대구에서 재창설했다. 이때 이병곤 일등중사는 신병교육에 전념하다가 제5사단 통신대로 전속되었다. 이 당시 국군과 유엔군의 주력이 북진작전을 한창 진행하고 있었다.
제5사단은 재창설된 후 10월 13일부터 11월 22일까지 영남 지역 후방지역작전에 투입되어 적 게릴라들을 소탕했고, 이후 가평, 청평, 춘천 일대에서 공비토벌작전을 완수했다. 북진을 계속하던 유엔군과 국군은 중공군의 두 차례에 걸친 기습공격에 의해 후방이 차단되어 다시 38도선으로 철수하고 있었다. 이러한 상황 하에 사단은 12월 5일경에 전방지역으로 투입되어 17번 국도상의 춘천 지역에서 평양-춘천 간 도로의 동측방에 대한 엄호작전을 실시했다. 이어서 12월 13일부터 사단은 춘천 북방 38도선 일대의 전선 방어(탑두울-배후령)에 투입되어 방어편성을 했다.
1951년에 접어들면서 사단은 가평-횡성-영주-안흥 일대를 오르내리며 중공군의 제3차 공세(신정공세)와 2월 공세를 막아냈다. 3월 3일부터 사단은 美 제10군단에 배속되어 태기산 전투(3월), 인제부근 전투(4월)에서 적을 격퇴하며 장평-봉화봉을 잇는 캔자스(Kansas)선(임진강-연천-화천저수지-양양을 잇는 선)을 확보했다. 그러나 사단은 4월 24일 전선조정으로 인제를 적에게 넘겨주었지만 다음날 오전에 인제를 공격하여 재탈환했다. 그 후 사단은 5월 7일 소양강 남쪽의 부평리-청구리 일대를 목표로 공격하여 논리 북쪽의 인제군 매봉-상수내리를 잇는 선의 진지를 점령하고 있었다.
마침내 5월 16일부터 중공군의 공격(일명 5월 공세)이 시작되었다. 이병곤 일등중사는 중공군 5월 공세 시 인제군 남면 일대에서 소대원을 통제하며 예하연대와 통신 소통 상태를 확인하던 중 5월 18일 적 포격에 맞아 장렬하게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병곤 일등중사의 공적과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하여 그의 위패(37판-3면-214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설치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32-ㄴ-098)에 이름을 새겨, 그의 나라 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