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병곤(李秉坤)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병
  • 군번 : 0170171
  • 전몰일자 : 19501128

공훈사항

이병곤 일병은 1928년 1월 9일에 경상남도 울산군 도서면에서 출생했다. 그는 6·25전쟁 당시 국군과 유엔군이 낙동강방어선에서 북한군의 8월 공세를 저지하던 1950년 8월 16일, 경북 대구의 육군 제1훈련소로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수료한 후 제6사단 수색대로 배치되었다.
이병곤 일병이 부대로 전입했던 9월 중순, 제6사단 장병들은 9월 16일부터 반격으로 전환했고, 그가 소속된 수색대는 사단 주력이 기동하기 전에 먼저 적진으로 침투해 적정을 수집하여 사단으로 보고하는 임무를 수행하고 있었다. 제6사단은 북한군의 저항을 격파하면서 함창-보은-괴산-충주-원주-춘천 방향으로 공격하여 10월 5일에는 춘천 북방의 모진교에서 38도선을 돌파했다. 사단은 화천-김화-덕원-마식령 방향으로 계속 공격하여 10월 19일에 성천을 점령했고, 21일에 순천-개천을 거쳐 23일에 희천 방향으로 진격했다.
유엔군은 10월 24일에 압록강을 향한 1차 총공세(일명 추수감사절 공세)를 실시했다. 이때 제6사단은 10월 25일에 온정리에서 압록강 변의 벽동, 초산 방향으로 진격했다. 당시 대규모 중공군(제40군)은 동림산(1165m) 기슭에서 은밀히 매복하다가 아군의 후방이 차단했다. 이에 기습을 당한 제6사단은 겹겹이 싸인 중공군의 포위망을 뚫고 험준한 산길을 돌파하여 11월 1일에 개천으로 집결했다. 이후 11월 14일에 영원-덕천으로 이동하여 국군 제2군단의 예비가 되었다.
유엔군은 11월 24일에 압록강과 두만강을 향한 2차 총공세(일명 크리스마스 공세)를 실시했다. 이번에도 중공군은 산속에 은거해 있다가 유엔군의 공격 2일 차인 11월 25일 야간부터 유엔군의 후방을 차단하기 시작했다. 이병곤 일병이 소속된 수색소대는 지금까지 적정 수집이 주 임무였으나, 이제 차단선을 돌파하여 후방으로 철수하는 것이 가장 중요했다. 수색소대는 겹겹이 쌓인 중공군의 포위망을 돌파하기 위해 치열한 전투가 불가피했다. 그는 11월 28일에 포위망을 돌파하는 전투에서 용감하게 싸우던 중 적의 총탄에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병곤 일병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그의 위패(04판-6면-266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모시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42-ㄴ-040)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