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병갑(李秉甲)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등중사
  • 군번 : 8100659
  • 전몰일자 : 19501201

공훈사항

이병갑 일등중사는 경상남도 함안군 법기면에서 출생했다(출생 일자 미상). 그는 신생 대한민국의 안보를 지키고자 1949년 7월경 제3사단 제23연대에 입대했다. 이 무렵 북한의 유격대가 경북의 일월산, 보현산 등지에서 활동하고 있었고, 이 일등중사는 1950년 3월까지 이 소탕작전에 앞장섬으로써 북한군의 후방교란 기도를 분쇄하는 데 기여했다.
6·25전쟁이 발발하자 연대는 6월 29일 울진지역에 투입되었다. 7월 1일부터 22일까지 연대는 울진, 영해, 영덕으로 지연전을 펼치면서 적의 남진을 저지했다. 7월 24일 제22연대가 제3사단으로 원대 복귀했고, 연대는 제22연대와 함께 7월 26일부터 9월 14일까지 동해안 축선의 강구, 영덕, 흥해, 포항, 형산강 일대에서 북한군 제5사단과 뺏고 뺏기는 공방전 끝에 적의 공격을 물리치고 총반격태세로 들어갔다.
인천상륙작전 성공을 계기로 국군은 9월 16일 총반격으로, 22일 추격작전으로 전환했고, 사단은 23일부터 추격작전을 전개했다. 연대는 일일 평균 17.3km의 속도로 진격하여 영덕, 울진, 삼척을 차례로 탈환하고, 30일에는 강릉을 탈환했다. 연대는 10월 1일 인구리 북쪽에서 38도선을 넘어 북진함으로써 최초의 38도선 돌파부대가 되었다.
이 일등중사와 연대 장병들은 사기충천하여 동해가도를 따라 양양, 거진, 장전, 통천을 점령하며 진격했고, 10월 10일 완강히 저항하는 적을 물리치고 원산 시가지를 점령했다. 사단은 영흥까지 진격했다가 다시 고원 동쪽 전탄강과 송전반도 및 그 서쪽 소두류산 일대의 잔적 소탕을 위해 이동하여 수색정찰과 전투를 지속했다. 이어 사단은 미 제10군단의 원산 상륙을 엄호하기 위해 또다시 원산으로 이동하여 10월 25일까지 외곽과 시내에 대한 경계를 했다.
사단은 10월 29일 북진을 계속하기 위해 함흥에 집결 후 11월 4일 신포로 이동했고, 18일 길주로 이동했다. 사단은 길주-백암으로 북진하여 25일 백암을 확보하고, 계속 북진을 하는 중에 30일 중공군의 참전으로 철수명령이 하달되었다. 이 진격전에서 이 일등중사는 소대원을 이끌고 선봉에서 전진하다 11월 29일 적탄에 맞아 중상을 입고 후송되었으나, 12월 1일 끝내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병갑 일등중사의 숭고한 희생을 기려 그의 위패(33판-40면-21908호)를 국립대전현충원에 모시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26-ㄷ-003)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