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병갑(이병갑)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병
  • 군번 : K1126930
  • 전몰일자 : 19510111

공훈사항

이병갑 일병은 1927년 9월 14일에 경상북도 의성군 단밀면에서 출생했다. 그는 6·25전쟁 당시 국군과 유엔군이 낙동강방어선에서 북한군의 총공세를 저지하던 1950년 9월 16일, 경남 부산의 육군 제2훈련소로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수료한 후 카투사로 선발되어 미 제8군으로 배치되었다가 육군의 병력배치조정에 의거 제6사단 공병대대로 전속되었다.
이병갑 일병이 부대로 전입했던 10월 중순, 제6사단은 춘천 북방의 모진교에서 38도선을 돌파한 후 계속 북진작전으로 10월 19일에 성천을 점령하고, 10월 23일에 개천을 거쳐 희천까지 진격했다. 이곳에서 국군과 유엔군은 10월 24일에 1차 총공세(일명 추수감사절 공세)를 실시했다. 그러나 이미 압록강을 건너온 중공군이 적유령 산맥 일대에 숨어 있다가 10월 26일에 압록강을 향해 진격하는 아군의 후방을 차단했다. 이에 사단 장병들은 10월 27일부터 겹겹이 싸인 포위망을 돌파하며 130km의 험준한 산길을 따라 철수하여 10월 31일에 개천에 집결했다. 이병갑 일병이 소속된 공병중대도 보병부대들과 함께 철수했다.
국군과 유엔군은 전쟁을 조기에 끝내기 위해 11월 24일을 기해 2차 총공세(일명 크리스마스 공세)를 실시했다. 이때도 중공군은 반격으로 국군의 후방을 차단했다. 이에 국군과 유엔군은 큰 피해를 받고 38도선으로 철수했다. 당시 제6사단은 12월 11일에 전곡-백의리 일대에 방어진지를 편성했다.
이병갑 일병이 소속된 공병중대는 차후 있을 중공군의 공격에 대비하여 주요 축선에 대해 지뢰지대와 철조망 지대를 설치했다. 드디어 중공군은 1950년 12월 31일 야간에 서울을 목표로 3차 공세(일명 신정공세)를 펼쳤다. 제6사단은 전곡 일대 방어진지에서 적의 공격을 격퇴하기 위해 노력했으나, 다음날인 1951년 1월 1일 새벽에 인접부대들이 돌파되어 측후방이 노출되자, 사단 장병들도 철수했다. 이날 공병중대는 최후까지 방어지역에 남아 장애물을 설치하여 중공군의 진격 속도를 지연시키고 마지막으로 의정부를 거쳐 서울 창동으로 철수했다. 이후 사단은 경기도 광주를 거쳐 1월 7일에 장호원 부근의 죽산리 일대에 방어진지를 구축했다. 당시 공병중대는 1월 11일에 방어진지에서 철조망을 설치하고 있었는데, 적 침투부대의 습격을 받아 치열한 전투 끝에 격퇴했다. 이날 그는 용감하게 싸우다가 적의 총탄에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병갑 일병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그의 위패(33판-40면-21909호)를 국립대전현충원에 모시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116-ㄷ-039)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