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벽환(이벽환)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병
  • 군번 : K1127834
  • 전몰일자 : 19510627

공훈사항

이벽환 일병은 1923년 10월 1일에 출생했다(출생 장소 미상). 그는 6·25전쟁 당시 국군과 유엔군이 낙동강방어선에서 북한군의 총공세를 저지하던 1950년 9월 17일, 경남 부산의 육군 제2훈련소로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수료한 후에 카투사(KATUSA)로 차출되어 미 제7사단으로 배치되었다.
이벽환 일병이 전입했던 10월 중순, 미 제7사단은 10월 6일에 부산으로 이동하여 부산에서 원산상륙작전을 준비했다. 얼마 후 10월 27일에 부산에서 출항하여 11월 8일에 함경남도 이원으로 상륙, 풍산-갑산 방향으로 공격하여 11월 21일에 혜산진을 점령했다. 이 무렵에 중공군이 장진호로 진격하는 미 제1해병사단을 포위하고, 미 제10군단의 후방을 차단했다. 이에 사단은 11월 27일부터 혜산진에서 철수하여 함흥으로 이동, 미 제3사단과 함께 흥남철수작전을 지원하고, 12월 21일에 흥남항에서 철수하여 부산항에 도착했다.
중공군이 12월 31일 야간에 총공세를 실시하자, 사단은 1951년 1월 7일에 대구에서 북상하여 평창 남서쪽, 그리고 원주 동남쪽 백운산 고지군을 점령하였다. 이곳에서 2월 11일에 시작된 중공군의 2월 공세를 맞아 중공군에게 큰 피해를 입히고, 2월 21일부터 제천-평창 축선으로 반격하여 평창 북쪽의 대미산을 탈취했다. 그리고 3월 5일부터 현리-인제 축선으로 공격하여 3월 말에는 현리 직전의 방태산까지 진출했으나, 이때 이벽환 일병이 소속된 미 제17연대는 양구로 공격방향을 전환하여 4월 21일에 양구를 탈환했다. 그러나 4월 22일 야간부터 시작된 ‘공산군의 4월 공세’로 다시 소양강을 건너 철수했다.
이벽환 일병이 소속된 미 제7사단은 5월 1일부로 미 제9군단에 배속 전환되어 홍천 서남쪽으로 이동했다. 그리고 반격작전으로 홍천에서 춘천 방향으로 공격하던 중에 5월 16일부터 시작된 ‘공산군의 5월 공세’를 맞아 홍천 남서쪽 일대로 철수했다. 이곳에서 사단은 5월 23일부터 홍천에서 춘천-화천 방향으로 반격하여 5월 28일에 화천을 점령하고, 계속 공격하여 6월 13일에는 적근산-주파령을 잇는 선까지 확보했다. 이후 사단 장병들은 방어진지 보강과 수색작전에 집중했다. 그가 소속된 소대는 6월 27일에 수색작전을 하던 중 적 침투부대를 발견하여 치열한 전투로 격멸했다. 이날 그는 미군 장병들과 함께 용감하게 싸우다가 적의 총탄에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벽환 일병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그의 위패(33판-40면-21907호)를 국립대전현충원에 모시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128-ㄲ-024)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