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법노(이법노)

  • 군별 : 육군
  • 계급 : 대위
  • 군번 : 14469
  • 전몰일자 : 19500922

공훈사항

이법노 대위는 서울시 동대문구 이문동에서 출생하였다(출생 일자 미상). 그는 국가의 간성이 되기 위한 큰 뜻을 품고 1948년 11월 17일에 육사 제8기로 입교하여 6개월간의 군사훈련을 수료한 후 1949년 5월 23일 육군 소위로 임관하여 수도사단에 배치되었다.
6·25전쟁이 발발하자 이법노 대위는 금강선 전선에 투입되었다. 그가 전선에 투입될 당시 수도사단은 제1연대와 제18연대로 편성되어 있었다. 사단은 금강선과 대평리 선이 위태롭고 또 청주 국사봉 방어선이 언제 돌파될지 모르는 상황에서 7월 17일 보은을 거쳐 20일 안동 부근으로 이동하였다. 북한군 제12사단이 안동 북쪽에서 계속 공격해오자, 이 대위의 지휘 아래 장병들은 8월 1일 안동 북쪽 일대에서 국군 제8사단을 엄호하면서 낙동강 남쪽으로 철수하였다. 이법노 대위와 장병들은 8월 3일 길안과 청송 일대에 새방어선을 설정해 이곳으로 철수하여 진지 후방으로 침투한 북한군과 치열하게 싸웠으나 역부족으로 의성 일대로 다시 철수하였다.
북한군 제12사단은 8월 9-12일 사이에 청송-죽장-기계축선으로 공격하여 기계와 포항을 점령하였다. 이 대위의 지휘하에 장병들은 16일 안강 북쪽 양동리 지역으로 투입되어 북한군과 공방전을 벌이면서 혼신의 힘을 다해 기계를 탈환하였다. 북한군의 9월 공세가 시작되자, 이 대위와 장병들은 9월 4일 경주 북방에 있는 호명리와 곤제봉, 무릉산 일대에서 치열한 공방전을 벌여 북한군을 물리쳤다.
이법노 대위와 장병들은 16일부터 퇴각하는 북한군을 낙동강전선에서 도평-영양-춘양-영월-평창-속사리 방향으로 추격하기 시작하였다. 그는 생과 사의 갈림길에서도 죽음의 위협을 두려워하지 않고 위기에 놓인 조국을 지켜야 한다는 일념으로 공방전을 계속하며 투혼을 발휘하였다. 이 대위는 매사에 적극적이고 장병들에게 솔선수범하는 훌륭한 중대장이었다. 전투 경험이 부족한 장병들을 지휘해 최후까지 용감하게 북한군과 맞서 싸웠던 이법노 대위는 1950년 9월 22일 영월 부근 전투에서 전사하였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법노 대위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유해(55묘역-7판-2689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안장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명비(109-ㅇ-029)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