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범화(이범화)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병
  • 군번 : 0103876
  • 전몰일자 : 19510103

공훈사항

이범화 일병은 1922년 1월 3일에 경상북도 달성군 공산면 중대리(現 대구광역시 동구 중대동)에서 출생했다(출생 일자 미상). 그는 6·25전쟁 발발 후 국군과 유엔군의 주력이 압록강 및 두만강으로 진격작전을 진행 중인 1950년 10월 13일 입대하여 대구에 위치한 육군 제1훈련소에서 기초군사훈련을 수료한 후 同 훈련소 조교요원으로 배치되었다.
한편, 개전 이래 수많은 전사자가 발생함에 따라 병력 보충 문제가 가장 중요한 문제로 대두되었다. 이에 육군본부는 병력 확보와 각 지역 방위 임무를 동시에 해결할 목적으로 1950년 7월 초순 각 도별로 편성관구사령부를 설치하고 신병 확보와 더불어 후방지역작전 임무를 수행하도록 했다. 7월 16일부로 각 편성관구사령부 예하에서 무기와 장비 보충이 없는 상태에서 신편(신병 모집) 중이던 연대들을 신병교육대로 개칭했다. 그 후 8월 14일에 육군본부 직할로서 대구에서 제1훈련소가 창설되었고, 8월 26일 제1훈련소에 제1·2·3·5·6·7·8·9교육대가 통합 편성되었다. 계속해서 1950년 8월 14일 부산에는 제2훈련소가 창설되었고, 8월 22일에 경남 구포에 제3훈련소가, 제주도 모슬포에 제5훈련소가 창설되면서 신병을 양성하여 부족한 병력을 보충했다.
이범화 일병이 훈련소에 배치될 무렵 전황은 북진했던 국군과 유엔군이 중공군의 참전으로 38도선으로 철수하고 있던 상황이었다. 후방지역에서는 북한군 패잔병 및 유격대와 좌익 빨치산 세력들의 습격, 파괴활동이 국군과 유엔군이 반격작전으로 전환하여 북으로 진격하는 시기에도 그치질 않았고, 중공군이 참전하자 더욱 심해졌다. 특히 대구에는 육군본부와 미 제8군사령부, 각종 지원부대, 정부기관 등이 밀집되어 있어 게릴라들의 공격 목표가 되고 있었다.
당시 상황이 워낙 긴급했고 병력도 부족했기 때문에, 이범화 일병이 소속된 제1훈련소는 신병훈련에 주력하면서도 동시에 인근에 출몰한 적들의 유격활동에 대응해야 했다. 훈련소는 조교를 포함한 기간요원으로 기동타격대를 편성하여 이들에 대한 소탕작전을 해 왔다. 1951년 1월 3일 대구 북방 팔공산에 적이 출몰했다는 신고가 들어왔고, 훈련소 기동타격대원들은 이들 소탕작전에 투입되었다. 이 전투에서 이범화 일병은 1월 3일 적 게릴라들을 색출하려고 분대원과 함께 탐색을 하다가 은거해 있던 적의 기습사격에 맞아 장렬하게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범화 일병의 공적과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하여 그의 위패(33판-40면-21905호)를 국립대전현충원에 설치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124-ㄹ-106)에 이름을 새겨,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