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범태(李範泰)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병
  • 군번 : 9201529
  • 전몰일자 : 19501023

공훈사항

이범태 일병은 충청북도 청주시 청원동에서 출생했다(출생 일자 미상). 그는 6·25전쟁 당시 국군과 유엔군이 낙동강 선으로 철수를 거듭하던 1950년 7월 중순, 경북 대구의 제25교육연대로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수료한 후 제6사단 직할부대인 공병대대로 배치되었다. 그가 소속된 공병중대는 제19연대를 직접지원하고 있었다.
이범태 일병이 부대로 전입했던 8월 중순, 제6사단은 북한군의 8월 공세를 신녕 북방의 국통산과 370고지 일대에서 격퇴하고 있었다. 이후 사단은 8월 31일 야간에 시작된 북한군의 9월 공세 시에 한때 신녕을 빼앗기는 등 위기가 있었으나, 결국 적의 공격을 격퇴하고, 9월 12일부터 반격작전을 준비하였다.
국군과 유엔군은 9월 16일 오전 9시를 기해 낙동강 전 전선에서 일제히 반격을 개시했다. 북한군은 유엔군의 인천상륙작전으로 그들의 후방이 차단되었다는 사실을 모르고 조림산을 거점으로 9월 22일까지 완강히 저항하다가 이날 야간에 소리 없이 퇴각했다. 이에 제6사단 장병들은 9월 23일부터 도망가는 북한군 제8사단을 추격하여 함창-문경-충주를 탈환하고 9월 30일에 원주를 탈환했다. 이어 10월 4일에 춘천을 탈환하고, 10월 6일에 38선을 돌파했다. 그리고 사단은 10월 10일에 김화를 경유하여 금성을 탈환했고, 13일에 신고산을 거쳐 덕원을 탈환했다. 10월 16일에는 마식령을 넘어서면서 북한군의 가벼운 저항을 물리치고 평남 양덕에 도착했다. 10월 19일에는 진격 방향을 바꾸어 순천-개천-희천 방향으로 공격하여 10월 20일에 희천을 탈환하고, 이곳에서 유엔군은 압록강을 향한 총공세작전을 준비했다.
이범태 일병이 소속된 공병중대는 북진작전 간에 제19연대의 선두에서 장애물을 개척하여 진격 속도를 증가시켰다. 공병중대는 10월 22일부터 희천에서 추후 개시될 유엔군의 총공격에 대비하여 공격 통로에 적이 설치한 지뢰지대를 개척하던 중 23일에 중공군으로부터 기습공격을 받고 큰 피해를 받았다. 이날 그는 적의 공격에 대응하여 전투하던 중 적의 총탄에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범태 일병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그의 위패(37판-4면-122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모시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41-ㅍ-052)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