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범천(李範天)

  • 군별 : 경찰
  • 계급 : 순경
  • 군번 :
  • 전몰일자 : 19511223

공훈사항

이범천 순경은 1932년 1월 6일 충북 중원군 동량면에서 출생했다. (경찰 입문 일자 미상). 그는 전몰 당시 경남도경 본부 소속으로 재직 중 지리산에서 전사했다.
제주 4·3사건(1948년)과 이듬해 여·순 사건으로 인하여 안보적으로 매우 어수선한 상황에서 지방공비 세력이 증가하자 정부는 군·경 합동으로 대대적인 공비토벌작전을 단행하기로 했다. 이 순경은 3단계(제1단계: 1949.10.30-11.30, 제2단계: 12.1-12.15, 제3단계: 1949.12.16-1950.2.28.) 토벌작전에 참여하여 많은 전과를 올렸다.
1950년 6월 28일 서울을 점령한 북한군 주공부대는 7월 3일 한강을 도하여 경부가도를 따라 남진했다. 이 무렵 경남 서부지역과 호남지역에는 2-10명의 소규모 공비들이 출몰하여 시간이 지날수록 그 수와 횟수가 증가했다.
이 순경이 포함된 경남도경 소속의 기동대는 7월 26일 하동서에 증원되어 하동 탈환작전(1950.7.27.)에 참가했으나 실패하고 말았다. 이후 기동대는 밀양에서 공비토벌작전(1950.8.14)을 수행하여 공비 20명을 사살하는 전과를 거두었다. 이어서 기동대는 8월 하순 진동리를 방어하던 군경부대가 적의 공세에 밀려 진동리로부터 철수하자 진동리에 투입되어 전남·전북 경찰부대와 함께 진동리지구 방어작전을 수행했다.
9월 15일 인천상륙작전이 성공적으로 수행되고 전선이 북상함에 따라 경찰관서 수복작전이 전개되었다. 경남경찰은 10월 14일 경남도경을 수복하고 피난민 구호와 통제활동, 철도·교량 경비, 오열색출 등의 임무를 수행했다.
국군·유엔군의 총반격으로 퇴로가 차단된 북한군은 가까운 산지로 들어가 공비들과 합류하여 게릴라 활동을 전개했다. 이에 치안국 비상경비총사령부의 공비섬멸 작전(1차: 1951.3.10-4.10, 2차: 1951.4.15-5.5, 3차: 1951.7.15-8.15) 지침에 따라 기동대는 이 기간에 공비섬멸작전을 수행했다.
이후 기동대는 제200경찰연대와 합류하여 서남지구전투사령부가 주도하는 공비토벌작전에 참가했다. 제200경찰연대는 12월 19일 지리산에서 공비 150명을 사살하였고, 12월 20일에는 노고산에 출현한 200명의 공비와 4시간 동안의 교전 끝에 공비들을 모두 격퇴했다. 이어서 12월 23일 경찰연대는 천왕봉에서 200여 명의 공비를 발견하여 수도사단 제26연대와 합동작전으로 공비들을 격퇴했다. 이 순경은 이날 적을 격퇴하기 위해 용감하게 싸우다가 공비가 쏜 총탄에 맞아 장렬하게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범천 순경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전쟁기념관 전사자 명비(096-ㅂ-078)에 이름을 새겨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