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범채(이범채)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병
  • 군번 : 0116387
  • 전몰일자 : 19500908

공훈사항

이범채 일병은 경상북도 대구광역시 동인3가에서 출생하였다. 소속 부대와 군번, 그리고 전몰 일자를 고려할 때, 이 일병은 1950년 4월경 입대 후 제8사단 직할부대에 배치되었다. 이 일병의 부대 전입 당시 제8사단은 1950년 4월까지 무장공비토벌 작전을 진행하고 작전 상황에 따라 강릉에 주둔해 있었다.
하지만 1950년 6월 25일 북한군의 기습남침을 받았고 3일간 강릉을 방어하다가 대관령을 넘어 철수하게 되었다. 이후 제8사단은 7월까지 충청북도 제천군, 단양군을 거쳐 죽령을 넘었고, 7월 말부터는 경상북도 일대의 중부 내륙지역의 산세를 따라 북한군에 대한 지연전을 실시하였다.
제8사단 장병들은 1950년 8월 의성군에서 북한군 공세를 방어했다. 이 지역은 5번국도 및 중앙선 철로가 지나는 군사적 요충지였다. 북한군은 대구시 공략을 위해 8월 7일부터 야간기습을 시도해왔고 아군의 분전에도 불구하고 북한군의 공세로 인해 결국 8월 12일 제8사단은 의성군에서 철수했다.
철수를 완료한 제8사단 장병들은 8월 경상북도 영천군 보현산 일대의 능선에 주저항선을 설치하여 대구와 포항으로 이어지는 거점을 방어하게 되었다. 이에 대해 북한군 제6사단, 제12사단은 국군 제8사단의 좌·우측방에서 포위공격을 가해왔다. 국군 제6사단에서 배속 해제된 제5연대가 제8사단에 배속되어 지원하였으나, 국군의 취약지점에 대해 북한군 제15사단이 돌파를 시도하여 결국 전선이 붕괴되고 말았다.
이후 제8사단은 1950년 8월 22일 515고지와 함께 633고지를 점령하고 공격을 개시하여 북한군을 패주 시키고 일대에 수색대를 파견하여 북한군의 역습을 격퇴했다.
1950년 9월에 들어서는 제8사단 각 연대를 비롯하여 아군 또한 방어태세를 갖추고 있었다. 아군은 항공기로 북한군의 주저항선 및 방어진지를 대대적인 폭격을 가하며 적을 분산시켰으며 방어진지 구축과 함께 북한군의 남진을 저지했다. 북한군의 남진을 저지한 이후엔 포병대대의 지원 하에 북한군의 방어진지를 분쇄하고 566고지, 500고지를 점령했지만 이 과정에서 이 일병은 1950년 9월 8일 적의 총탄에 맞아 안타깝게도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범채 일병의 공적과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하여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119-ㅁ-008)에 이름을 새겨, 그의 나라 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