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범중(이범중)

  • 군별 : 육군
  • 계급 : 중위
  • 군번 : 117250
  • 전몰일자 : 19500716

공훈사항

이범중 중위는 출생에 대한 기록이 없다. 그는 신생 대한민국을 지키고 조국을 위해 헌신하고자 1949년경 육군에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받고 육본 직할부대에 배치되었다. 이 중위는 창설 초기의 어려움 속에서도 경비 임무와 교육훈련에 솔선수범 앞장섬으로써 육군의 기초를 다지는 데 기여했다.
6·25전쟁이 발발할 때 이 중위는 장교가 되고자 경기도 시흥에 있는 육군보병학교에 갑종후보생 제1기로 입교하여 후보생으로 교육을 받고 있었다. 기습 남침한 북한군 제6사단(-)은 개성을 점령한 뒤 25일 저녁 국군 제1사단 제12연대를 추격하여 영정포, 강녕포 일대에서 도하준비를 했다. 북한군의 도하 징후를 포착한 육군본부는 급히 김포지구전투사령부를 설치하고 그곳으로 도하한 제1사단 제12연대 제2대대를 포함하여 남산학교, 보병학교, 공병학교, 보국대대 등 서울 인근의 가용 병력을 혼합 편성하여 적의 공격을 저지하도록 했다.
이에 제12연대 제2대대, 기갑연대 혼성대대, 보국대대, 보병학교 후보생대대 등이 긴급 편성되어 김포반도의 한강 남안에 급편방어진지를 편성했다. 이때 한강 남안에 배치된 아군은 임시로 긴급 편성된 부대들로서, 통신 수단이 강구되어 있지 않아 인접에 어느 부대가 배치되었는지도 서로 알지 못한 채 방어에 임하고 있었다. 따라서 조직적인 방어가 이루어질 수가 없었다. 북한군 제6사단은 26일 밤부터 도하 공격을 개시했고, 27일 오전에 아군 방어선이 붕괴되면서 아군 부대들은 제각기 철수했다.
보병학교 후보생대대는 좌측방이 공격을 받고, 적이 후방으로 침투함에 따라 27일 11시에 철수하여 장림-운유산 선의 장림 삼거리 북쪽의 구릉지 일대를 점령하여 적의 전진을 막고자 했다. 당시 후보생 대대원들이 장비한 99식 소총은 격발장애가 많았고, 탄약도 제한되어 대대원들은 거의 맨주먹으로 싸우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이 중위를 포함한 후보생 대대원들은 적의 전진을 막아보고자 안간힘을 다했으나 역부족이었다. 오후 1시를 전후하여 장림 선이 무너지자 후보생대대는 김포읍 쪽으로 철수했다. 이후 이 중위는 보병학교 장병들과 함께 한강방어선전투를 수행하고, 수원-대전으로 지연전을 실시하다 적탄에 맞아 7월 16일 장렬히 전사했다. 갑종후보생 제1기는 1950년 7월 15일 육군 소위로 임관했고, 이때 이 중위도 육군 소위로 임관하여 사후 중위로 추서되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범중 중위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그의 위패(22판-2면-937호)를 국립대전현충원에 모시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122-ㅅ-072)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