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범준(李範俊)

  • 군별 : 육군
  • 계급 : 하사
  • 군번 : 9317551
  • 전몰일자 : 19521118

공훈사항

이범준 하사는 충천남도 논산군 노성면에서 출생했다(출생 일자 미상). 그는 6·25전쟁 당시 유엔군과 공산군 사이에 지루한 휴전협상이 진행되던 1952년 4월 하순, 제주도 모슬포의 육군 제1훈련소로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수료한 후 6월 16일에 제2사단 제17연대로 배치되었다.
이범준 하사가 부대에 배치되었을 때, 제2사단은 사창리 일대에서 야외기동훈련으로 전투력 향상에 매진한 후 1952년 6월 1일부로 미 제9군단에 재배속되어 군단의 예비가 되었다. 이후 6월 30일부로 김화 동쪽의 남대천 일대의 방어진지를 미 제40사단으로부터 인수했다. 전선의 소강상태가 계속되는 가운데 사단 장병들은 진지보강과 교육훈련에 집중했다.
그런데 공산군이 휴전협상을 지연시키며 군사력을 증강하자, 유엔군은 휴전협상을 촉진하기 위해 공세 행동을 강화하도록 예하 부대에 명령을 하달했고, 이에 제2사단은 군단명령에 의거 오성산 남쪽의 중공군 전초지역인 저격능선을 공격하기로 계획했다. 저격능선은 방어진지 전방의 주요 감제고지로서 오성산을 공격할 때 발판을 제공할 수 있는 요충지였다.
이범준 하사가 소속된 제17연대는 10월 14일에 사단의 선두부대로 공격을 개시하여 치열한 전투 끝에 저격능선을 탈취했다. 이에 오성산 일대에 배치되어 있던 중공군 제15군이 그날 밤부터 역습을 감행하였고, 이후 피아간에 뺏고 빼앗기는 공방전이 수차례 있었다. 연대는 10월 20일에 저격능선을 탈취한 후 중공군의 공격을 수차례에 걸쳐 격퇴했으나, 11월 11일과 13일에 중공군의 대대적인 공격을 받아 저격능선에서 퇴각했다.
제17연대는 며칠 간의 전투준비를 하여 11월 17일 아침에 저격능선의 돌바위고지를 탈환하기 위해 포격 지원을 받으며 공격을 개시하였다. 연대는 2시간여의 교전 끝에 목표를 탈환하였고, 다음날 저격능선상의 A고지와 돌바위고지를 모두 장악했다. 이범준 하사는 11월 18일 전투에서 용감히 싸우다가 적의 총탄에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범준 하사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화랑무공훈장(훈기번호 117471 육)을 추서하고, 그의 유해(장병1묘역-117판-7061호)를 국립대전현충원에 모시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21-ㅂ-038)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