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범주(李範柱)

  • 군별 : 육군
  • 계급 : 이등상사
  • 군번 : 0365431
  • 전몰일자 : 19500919

공훈사항

이범주 이등상사는 서울시 마포구 공덕동에서 출생하였다(출생 일자 미상). 그는 신생 대한민국의 자유를 지키고 조국에 헌신하고자 1949년 1월 중순경 육군에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수료한 후 육군직할 제1유격대에 배치되었다.
6·25전쟁이 발발한 이후 1950년 8월 육군본부에서는 동부전선의 포항지구에서 북한군의 공세를 차단하는 동시에 상륙기습을 통한 양동작전을 계획하면서 상륙부대를 밀양에서 훈련 중이던 육군 독립 제1유격대대(일명 명부대 또는 제772부대)를 선정하였다. 이 대대는 적 기만과 부대원 사기를 고려하여 대대를 사단으로, 중대를 연대로 호칭하여 제28・29・32・37연대로 위장 편성하고, 계급도 위장했다.
대대는 영덕 지구에 상륙하여 북한군 제2군단의 후방을 교란함과 동시에, 인천상륙작전을 기만할 목적으로 장사동 상륙작전을 실시했다. LST 문산호는 9월 14일 오후 4시에 제1유격대대를 태우고 부산항을 출항, 15일 새벽 5시경 장사동 부근 해상에 도착했다. 아군의 상륙을 알아차린 북한군의 포격으로 완전히 육지에 착안하지 못하고 해안에서 20~30미터 떨어진 상태에서 상륙을 감행했다.
이 과정에서 북한군이 문산호와 상륙 중인 아군에 대해 집중 사격을 가해옴으로써 많은 사상자가 발생했고, 문산호까지 파도에 휩쓸려 좌초되었다. 대대는 이런 어려운 상황을 극복하고 1950년 9월 15일 오전 9시경 상륙을 완료했다.
당시 상황이 워낙 긴급했고 병력도 부족했기 때문에, 제2훈련소는 신병훈련에 주력하면서도 동시에 인근에 출몰한 적들의 유격활동에 대응해야 했다. 훈련소는 조교를 포함한 기간요원으로 기동타격대를 편성하여 이들에 대한 소탕 작전을 해왔다. 9월 19일 부산항만 인근에 적 게릴라들이 출몰했다는 신고가 들어왔고, 훈련소 기동타격대원들은 즉각 출동하여 소탕 작전으로 격멸했다. 이 전투에서 이범주 이등상사는 적 게릴라들을 탐색하여 포위망을 좁혀가던 중, 적 기습사격에 맞아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범주 이등상사의 공적과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전쟁기념관의 전사자명비(082-ㅋ-053)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 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