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범조(李帆祚)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등중사
  • 군번 : 0238166
  • 전몰일자 : 19520710

공훈사항

이범조 일등중사는 1929년 3월 16일에 경상남도 사천군(現 사천시) 서포면에서 출생했다. 그는 6·25전쟁 발발 후 중공군의 참전으로 대한민국이 다시 위기에 처하자 1951년 1월 10일 입대하여, 부산에 위치한 육군 제2훈련소에서 기초군사훈련을 수료한 후 제5사단 수색대로 배치되었다.
이범조 일등중사가 부대에 배치될 무렵 전황은 1·4후퇴로 37도 선의 평택-안성선까지 물러난 국군과 유엔군이 전력을 회복 후 총반격을 개시하면서 23만 명의 대병력으로 서울재탈환 작전을 실시하고 있었다. 제5사단은 중공군의 제3차 공세(신정공세)를 저지한 다음 1951년 2월 5일부로 홍천 포위 공격을 개시하여 적 주력이 4일 동안 완강하게 저항하던 방어거점인 강원도 횡성 일대 317고지-412고지-247고지를 돌파하고 섬강 남쪽으로 진출했다.
이후 사단은 2월 12일부터 시작된 중공군의 2월 공세 이후 국군 제1군단에 배속되어 단양-풍기 간의 주보급로 경계임무를 수행하고 있었다. 美 제10군단에 배속된 사단은 태기산 전투(3월), 소양강-인제지역 전투(4월), 홍천북방지역 전투(5월), 현리-서화지역 전투(6월) 등에 참가하여 중공군 춘계공세를 저지했다. 이로써 사단은 장평-봉화봉을 잇는 캔자스(Kansas)선(임진강-연천-화천저수지-양양을 잇는 선)으로 진격하면서 반격에 유리한 여건을 조성했다.
8월에 접어들어 美 제10군단은 南으로 만곡부를 이루는 전선을 北으로 밀어 올리기 위해 강원도 양구 일대 해안분지(펀치볼) 확보작전을 실시했다. 이에 따라 이범조 일등중사가 소속된 사단은 가칠봉 전투에서 9월 5일부터 10월 14일까지 5,000여 명의 사상자를 내면서 북한군 3개 사단과 혈전을 벌였다. 사단은 가칠봉과 서희령을 굳건하게 지켜냈으며, 현 진지를 10월 20일 제3사단에게 인계하고 육본 직할로 전환되어 강원도 양양으로 이동했다.
그 후 사단은 1952년 1월 13일부로 제1군단에 배속되어 23일부터 제11사단의 전선을 인수하면서 거진 일대 554고지-351고지-감호 일대를 잇는 방어선을 담당했다. 전선은 7월 초순까지 소강상태가 지속되었다. 마침내 북한군 제9사단은 7월 10일 야간 10시에 대규모의 공격준비사격에 이어 351고지를 집중 공격했다. 이 전투에서 이범조 일등중사는 많은 전과를 올렸으며, 7월 10일 351고지 일대에서 소대원을 지휘하며 방어진지를 사수 중 적 포탄에 맞아 안타깝게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범조 일등중사의 혁혁한 전공을 표창하여 화랑무공훈장(훈기번호 129527 육)을 추서하고, 공적과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전쟁기념관 전사자 명비(034-ㅍ-065)에 이름을 새겨, 그의 나라 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