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범윤(李範允)

  • 군별 : 육군
  • 계급 : 이병
  • 군번 : 0640307
  • 전몰일자 : 19520102

공훈사항

이범윤 이병은 1933년 8월 26일에 전라남도 진도군 임회면에서 출생했다. 그는 6·25전쟁 당시 국군과 유엔군이 중공군의 공세로 38도선 일대에서 일진일퇴를 거듭하던 1951년 9월 13일 입대하여, 제주도에 위치한 육군 제1훈련소에서 기초군사훈련을 마친 후 제5사단 제36연대로 배치되었다.
이범윤 이병이 부대에 배치될 무렵 전황은 1951년 7월 10일부터 시작된 휴전협상이 진행되는 가운데 국군과 유엔군이 캔자스(Kansas)선(임진강-연천-화천저수지-양양을 잇는 선)과 그 북방에서 중공군 및 북한군과 공방전을 벌이고 있던 상황이었다. 휴전회담장이 있는 개성이 포함된 서부전선에서는 충돌을 자제하였으나, 중・동부를 중심으로 한 전선에서는 ‘血戰’을 벌이고 있었다.
당시, 美 제10군단은 南으로 만곡부를 이루는 전선을 北으로 밀어 올리기 위해 양구 일대의 해안분지(펀치볼) 확보작전을 실시했다. 美 제10군단에 배속되어 있던 제5사단은, 이범윤 이병이 소속된 제36연대가 ‘피의 능선(Bloody Ridge)’전투를 완수하고 복귀한 뒤, 9월 5일부터 10월 9일까지 가칠봉 부근 전투에서 1211고지를 목표로 공격했다. 1211고지는 전 작전지역을 감제 가능한 핵심목표로써, 사단은 세 번씩이나 목표를 점령하는데 성공했으나 그때마다 적의 역습에 이를 상실했다.
결국 10월 14일 양구 북방의 894고지-931고지-851고지를 잇는 단장의 능선 전투가 종결될 무렵, 제5사단은 그 동측의 841고지를 점령하면서 이 전투를 종결했다. 비록 1,211고지를 점령하는데 실패하였지만, 사단은 끈질긴 전투로 박달고개-가칠봉-서희령 전선을 굳게 지켜냈다. 이 전투로 해안분지(펀치볼)확보에 결정적인 기여를 함과 아울러, 단장의 능선 전투에도 동측방으로 부터의 위협을 차단함으로서 크게 기여했다.
사단은 북한군 제27・제2・제13사단을 맞이하여 교전과 혈전을 벌인 이 전선을 10월 20일에 국군 제3사단에 인계하고 양양으로 이동했다. 이후 사단은 1952년 1월 12일까지 육군 예비로서 부대정비 및 교육훈련에 전념을 하면서 인근 지역에 대한 수색정찰과 매복 작전을 병행했다. 이범윤 이병은 1월 2일 고성 일대에서 분대원과 함께 매복 작전 중 적 침투부대와 교전 중 적 총탄에 맞아 장렬하게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범윤 이병의 공적과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하여 그의 위패(33판-40면-21903호)를 국립대전현충원에 설치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34-ㅋ-038)에 이름을 새겨, 그의 나라 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