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범우(李範雨)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등중사
  • 군번 : 0188517
  • 전몰일자 : 19530629

공훈사항

이범우 일등중사는 1926년 8월 29일 경기도 평택군 송탄면에서 출생했다. 그는 6·25전쟁으로 조국이 위기에 처하자 나라와 자유를 지키기 위해 일어섰다. 이 일등중사는 1951년 2월 16일 대구에 있는 제1훈련소에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받고 제3사단 제22연대에 배치되었다.
이 일등중사가 부대에 배치될 무렵 전황은 국군과 유엔군이 37도선 일대에서 반격 중이었고, 제3사단은 인제 일대에서 공격 중이던 상황이었다. 연대는 평창, 횡성, 현리, 인제 일대를 오르내리며 1951년 5월까지 중공군 제3~5차 공세에 맞서 공방전을 펼쳤다.
연대는 5월 25일 제1군단으로 배속 전환되어 양양, 간성 일대에서 후방지역작전을 펼치다가, 10월 20일부로 미 제10군단으로 배속이 변경되어 양구 동북방 가칠봉으로 이동하여 제5사단의 진지를 인수 후 1,211고지에서 적과 공방전을 펼쳤다. 사단은 1952년 1월 12일 미 제9군단으로 배속 전환되어 백석산 서북방 임남 일대의 북한강~739고지~949고지~석장리 간의 제6사단 진지를 인수했다.
4월 5일 재창설된 제2군단이 미 제9군단의 전선을 인수함에 따라 사단은 제2군단으로 배속 전환되었다. 연대는 1953년 3월까지 사단의 전초진지인 피의고지 및 독수리고지, 689고지 일대에서 치열한 공방전을 거듭한 끝에 이 고지들을 지켜냈다. 중공군은 국군의 금성 돌출부에 대한 본격적인 하계공세를 시작하기 전 서전으로, 1953년 4월 2일 사단 주저항선인 949고지, 973고지의 전초가 설치된 689고지에 대해 대대적인 공격을 개시했다. 연대 장병들은 중공군 제181사단의 공격을 맞아 12일까지 8번이나 고지의 주인이 바뀌는 혈전을 거듭한 끝에 이 고지를 지켜냈다.
중공군 제2단계 하계 공세(6월 공세) 때 적의 공격이 제5사단에 집중되자, 연대는 6월 11일부로 제5사단에 배속되어 임남 일대의 883고지에서 중공군 제181사단과 치열한 공방전을 치렀으나, 결국 이 고지를 적에게 내주고 말았다. 사단은 6월 15일 다시 제2군단에 배속되어 백암산 전방 북한강과 금성천 분기점 상의 529고지(관망산) 전투에 투입되었다. 중공군 제180·제201사단은 6월 25일 공격을 개시했고, 사단은 7월 3일까지 7차에 걸쳐 역습을 감행하며 치열한 공방전을 치렀으나, 끝내 이 고지를 적에게 내주고 말았다. 이 전투에서 이 일등중사는 소대원을 독려하며 진지를 지켜내다 6월 29일 적탄에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범우 일등중사의 숭고한 희생을 기려 그의 유해(55묘역-4판-35348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모시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29-ㅋ-043)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