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범우(李範雨)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병
  • 군번 : 0637957
  • 전몰일자 : 19520327

공훈사항

이범우 일병은 충청남도 공주군(現 공주시) 의당면에서 출생했다(출생 일자 미상). 그는 6·25전쟁 당시 국군과 유엔군이 중공군의 공세로 38도선 일대에서 일진일퇴를 거듭하던 1951년 9월 4일 입대하여, 제주도에 위치한 육군 제1훈련소에서 기초군사훈련을 수료한 후 제5사단 제27연대로 배치되었다.
이범우 일병이 부대에 배치될 무렵 전황은 국군과 유엔군이 캔자스(Kansas)선(임진강-연천-화천저수지-양양을 잇는 선)과 그 북방에서 중공군 및 북한군과 공방전을 벌이고 있던 상황이었다. 1951년 8월에 접어들면서 美 제10군단은 남으로 만곡부를 이루는 전선을 북으로 밀어 올리기 위해 해안분지(펀치볼) 확보작전을 실시했다.
이에 따라 美 제1군단에서 美 제10군단으로 배속 전환된 제5사단은 9월 4일 제27연대를 주력으로 사단목표인 양구 지역 가칠봉 동북쪽 능선과 서희령(西希嶺)을 점령했다. 다음날부터 9월 22일까지 전 작전지역을 감제 가능한 1,211고지를 목표로 제27, 35연대가 교대로 공격을 펼쳤으나 실패하자 사단 예비인 제36연대를 투입하기 위하여 부대 재배치를 단행했다.
10월 1일에 제36연대가 1,211고지를 탈취하였으나 적의 강력한 역습으로 1,211고지의 아군 방어진이 포위되자 사단은 철수할 수밖에 없었다. 이후 이범우 일병이 소속된 제27연대가 10월 8일 제35연대 제2대대의 엄호하에 공격을 개시했다. 그러나 다음날 사단은 적의 역습으로 또다시 가칠봉으로 철수하면서, 10월 14일 가칠봉 부근 전투를 종결했다. 이 전투에서 사단은 40여 일간의 끈질긴 전투로 박달고개-가칠봉-서희령 전선을 굳게 지켜 해안분지(펀치볼)확보에 결정적으로 기여했다.
그 후 사단은 10월 20일에 이 전선을 국군 제3사단에 인계하고, 육본 직할로 전환되어 강원도 양양으로 이동하여 부대정비와 교육훈련에 집중했다. 1952년 1월 13일부로 사단은 제1군단에 배속 전환되어 동해안 거진으로 이동하여, 1월 23일부터 제11사단의 전선을 인수하고 554고지-351고지-감호 일대를 잇는 방어선을 담당하게 되었다. 정면의 적은 북한군 제47, 9사단으로서 적은 월비산을 확보한 상태에서 사단의 전초진지와 주저항선을 공격하기 위해 호시탐탐 기회를 엿보고 있었다.
이에 제27연대는 진지를 더욱 강화하면서 적정 탐색 및 적 침투 방지를 위한 수색정찰과 매복 작전을 지속했다. 이범우 일병은 3월 27일 분대원과 함께 351고지 일대를 수색정찰 중 매복한 적의 총탄에 맞아 장렬하게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범우 일병의 공적과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하여 전쟁기념관 전사자 명비(034-ㅁ-050)에 이름을 새겨, 그의 나라 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