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범우(李範雨)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병
  • 군번 : 0123016
  • 전몰일자 : 19510507

공훈사항

이범우 일병은 1926년 5월 4일에 서울특별시 성동구 신당동에서 출생했다. 그는 6·25전쟁 당시 국군과 유엔군이 압록강까지 진격했다가 중공군으로부터 기습공격을 받고 다시 38도선으로 철수한 1950년 12월 초순, 대구의 육군 제1훈련소에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수료한 후 제11사단 제9연대에 배치되었다.
이범우 일병이 부대로 전입했던 1951년 1월 초순, 제9연대는 광양·백아산·순천 일대에서 공비토벌작전을 수행하고 있었다. 장병들은 게릴라들의 강력한 저항에 맞서 근거지 파괴와 지도 인물 체포를 통해 게릴라의 재집결을 봉쇄한다는 목표를 두고 작전을 전개했다. 특히 이 시기에는 이전과 달리 유엔 공군의 지원을 받아 육군과 공군의 합동작전까지 전개했다. 제9연대는 3월 17일 화학산 일대에서 게릴라들과 교전해 남해여단장, 부여단장, 참모장, 중앙감찰부장 등 거물 인사를 비롯해 86명의 게릴라를 사살하였으며, 3월 22일에는 순천을 습격한 게릴라들과 교전을 벌여 남로당 문화부장 등을 사살하는 전과를 올리기도 했다. 그 결과 공비들의 세력 단위 활동은 소멸되었으나, 소규모 활동은 이어 갔다.
이범우 일병이 소속된 제11사단은 4월 6일에 국군 제8사단에게 공비토벌작전 임무를 인계하고, 대구·경산 일대로 이동하여 교육훈련을 한 후에 4월 중순에 동해안 양양으로 이동하여 국군 제1군단에 배속되었다. 이후 사단은 4월 22일부터 시작된 공산군 4월 공세를 속초-간성 일대에서 저지했으나, 북한군의 강력한 공격에 4월 25일부터 철수하여 양양 북방의 대포리를 잇는 선에서 저지했다. 이곳에서 제11사단 장병들은 공산군의 4월 공세를 격퇴하고, 5월 3일부터 반격으로 전환하여 마등령-저항령-989고지 방향으로 진격했다. 그는 5월 7일 전투에서 용감하게 싸우다가 적의 총탄에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범우 일병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전쟁기념관의 전사자 명비(073-ㄷ-029)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