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범우(이범우)

  • 군별 : 육군
  • 계급 : 이등중사
  • 군번 : 0801315
  • 전몰일자 : 19530209

공훈사항

이범우 이등중사는 1930년 8월 12일 충청북도 충주에서 출생하였다. 그는 북한의 기습남침으로 조국이 위기에 처하자 1952년 1월 21일 논산에 위치한 제2훈련소로 입대하여 간단한 기초군사교육을 수료한 후 제1사단에 배치되었다.
이범우 이등중사가 제1사단에 배치되었을 당시 판문점에서는 휴전회담이 진행 중이었으나 전투도 계속되고 있었다. 이 이등중사는 임진강 방어선에 배치되어 소규모 전투를 계속하였다. 양측은 서부전선에서 대규모 공세를 자제하였지만 신경전과 소규모전투는 더욱 치열하게 전개되었다.
이범우 이등중사가 소속된 사단은 1952년 10월 1일부터 임진강 동서안, 역곡천 남안을 연한 주저항선을 방어하였다. 그는 임진강 서안 일대를 방어하고 임진강 동안의 고지전을 수행하였으며, 때때로 북한군 전초진지에 침투하여 북한군 포획작전에 참가하기도 하였다. 이 이등중사는 소규모 매복전투, 상대방의 첩보 및 정보를 획득하기 위한 적진정찰 등의 작전을 계속하였고 포로획득을 위한 작전도 계속되었다. 대규모 작전보다도 더욱 치열하고 정교한 작전이었다.
이범우 이등중사와 장병들은 고지탈환작전에도 투입되었다. 12월 11일 소노리 고지에서는 7부 능선상에서 북한군의 집중포화와 수류탄 세례를 받아 공격이 진척되지 않고 있었으나, 대노리 고지를 공격한 중대는 전차 소대의 지원하에 1개 소대를 우회시켜 대노리 고지를 확보할 수 있었다.
이후 이 이등중사와 연대 장병들은 1953년 1월 23일 노리 고지를 급습하여 고지를 점령하였다. 이에 따라 고지탈환 후 북한군의 기습을 대비하여 야간정찰과 진지 보강작업에 주력하였다. 쌍방은 교착된 전선에서 전투보다는 진지 강화와 부대정비에 전력하였으며, 전초와 엄호부대 사이의 수색 정찰대 운용을 강화하였고, 방어진지나 활동을 탐색하는 수색 정찰 등을 주목적으로 실시하였다.
이범우 이등중사가 전투를 수행하는 고지에서는 서로 뺏고 빼앗기는 공방전이 반복되면서 북한군과 아군의 시체가 쌓여갔다. 생과 사의 갈림길에서도 죽음을 두려워 않고 오직 위기에 놓인 조국을 지켜내야 한다는 일념으로 공방전을 계속하며 투혼을 발휘했던 이 이등중사는 1953년 2월 9일 양주 부근 전투에서 장렬히 전사하였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범우 이등중사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전쟁기념관의 전사자명비(111-ㅊ-011)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