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범용(李範用)

  • 군별 : 육군
  • 계급 : 하사
  • 군번 : 0685438
  • 전몰일자 : 19530607

공훈사항

이범용 하사는 1930년 7월 3일 전라남도 나주군 봉황면에서 출생했다. 그는 6·25전쟁 발발 이후 전선이 교착되고 휴전협상이 진행되는 시기에, 조국과 자유를 지키고자 분연히 일어섰다. 이 하사는 1952년 1월 17일 제주도 모슬포에 있는 제1훈련소에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받고 동 훈련소 조교로 배치되었다. 이 하사는 신병교육에 전념하다 제50교육보충연대가 창설되자 이 연대로 전속되었다.
한편, 한·미는 미군 재보충이 어려운 상황과 휴전 후의 한국 국방을 고려하여 1952년 초부터 육군을 10개 사단에서 20개 사단으로 증편하는 계획을 추진했다. 이에 따라 4월 28일 3개의 경장비 교육보충연대(제37·38·39연대)가 창설되었고, 6월 13일 다시 같은 성격의 3개 연대(제50·51·52연대)가 창설되었다. 제50교육보충연대는 1952년 가을에 서남지구전투사령부와 함께 호남지역 공비토벌작전을 전개하여 지역 내 공비를 거의 다 소탕하고, 10월 말경 강원도 양양으로 이동하여 부대 개편에 착수했다.
육군본부는 11월 8일 위의 6개 경보병연대를 중장비 연대로 개편함과 아울러 6개 경보병연대(제53~제59교육보충연대)를 또다시 창설했다. 그리고 같은 날 강원도 양양에서 제12, 제15사단을 창설했다. 이때 제15사단은 제57·58·59교육보충연대를 잠정 배속하여 창설되었다가, 11월 14일부로 이들 연대를 배속 해제하고, 중장비 연대로 개편 완료된 제38·39·50연대를 건제부대로 편성했다.
사단은 1953년 1월 12일부로 제1군단에 배속되어 1월 30일 제5사단이 수행하던 동해안 지구 방어임무를 인수했다. 사단은 남강 남안의 554고지-351고지-동해안에 이르는 16km의 정면을 맡았고, 제50연대는 사단의 우측 연대로서 351고지에 배치되었다가, 4월 11일부로 사단 예비로 전환되었다. 연대는 큰 전투가 없는 가운데 진지를 보강하면서 위력수색, 매복작전 등을 지속했다.
북한군은 6월 본 공세에 앞서 351고지 일대에 전력을 집중했다. 사단 전방의 북한군 제7군단 예하 제7사단은 6월 2일 집중 공격을 감행했고, 사단은 제38연대가 351고지를 빼앗기자 제50연대를 투입했다. 연대는 7일까지 4차례나 역습을 가하면서 분전했지만 끝내 351고지를 탈환하지 못하고 전투를 종료했다(제1차 전투). 이 전투에서 이 하사는 분대원을 이끌고 선두에서 용감하게 싸우다 적탄에 맞아 6월 7일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범용 하사의 혁혁한 전공과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화랑무공훈장(훈기번호 149067 육)을 추서하고, 그의 위패(26판-3면-014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모시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76-ㄹ-038)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