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범용(이범용)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병
  • 군번 : 0251131
  • 전몰일자 : 19510518

공훈사항

이범용 일병은 출생일자와 출생지에 대한 기록이 없다. 이 일병은 북한군의 기습남침으로 조국이 위기에 처하자 나라와 자유를 지키기 위해 분연히 일어났다. 이 일병은 1951년 2월 19일에 입대 후 부산에 있는 제2훈련소에서 기초군사훈련을 받고 제9사단 직할부대에 배치되었다.
제9사단은 1951년 3월 5일에 제1군단으로 배속 전환되어 안동 일대까지 침투했다.
북한군 제10사단이 두타산(1,361고지) 북쪽의 삼화리를 경유해 북상 중이라는 첩보를 입수하여 이에 따라 이 일병을 포함한 연대 장병들은 1951년 3월 12일에 송계리에 투입되었다.
연대는 북한군을 차단하기 위해 남쪽과 동남쪽에서 공격을 개시하였다. 적들은 포위망이 압축되자 완강하게 저항하였고, 적군은 3월 18일 새벽, 밤이 되어 아군이 공격을 잠시 중지한 틈을 이용하여 포위망을 뚫고 북쪽의 목계리로 도주했다.
유엔군은 1951년 4월에 접어들어 38도선 상의 유리한 방어지역인 캔자스선(임진강~연천~화천저수지~양양을 잇는 선)을 확보하기 위해 공격을 개시했다. 제9사단은 적의 저항을 받으며 4월 중순에 하진부리 일대까지 진격했다. 사단은 미 제8군의 작전계획에 따라 1951년 5월 7일에 미주리(Missouri)선(가리봉산∼인제 북방∼원통 북방∼미시령∼속초를 잇는 선) 확보를 목표로 공격을 개시하였다.
그 결과로 강원 인제 동남방의 한석산, 가리봉 일대까지 진출하여 인제 남방의 598고지를 점령했다. 그러나 이 무렵 중공군의 대규모 공세 징후가 포착되어 사단은 방어 태세로 전환했다.중공군은 1951년 5월 16일에 현리 일대의 국군 정면에 전투력을 집중하여 5월 공세를 개시했다.
군단의 유일한 보급로인 오마치고개가 중공군에게 선점되었고, 연대는 현리에서 적의 포위망을 뚫고 수많은 희생자를 내며 방태산을 넘어 광원리-속사리로 철수했다. 하지만 이 일병은 속사리 부근 전투에서 적탄에 맞아 1951년 5월 18일에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범용 일병의 혁혁한 전공과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121-ㅋ-001)에 이름을 새겨, 그의 나라 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