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범용(李範龍)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병
  • 군번 : 0322354
  • 전몰일자 : 19510216

공훈사항

이범용 일병은 경기도 파주군 교하면에서 출생했다(출생 일자 미상). 그는 6·25전쟁으로 조국이 위기에 처하자 나라와 자유를 지키고자 일어섰다. 이 일병은 1950년 10월 초순 제주도 모슬포에 있는 제5훈련소에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받고 제3사단 제23연대에 배치되었다.
이 일병이 부대에 배치될 무렵 전황은 국군과 유엔군이 북진작전을 전개하고 있었고, 제3사단도 동해안 축선을 따라 진격 중인 상황이었다. 이 일병과 연대 장병들은 사기충천하여 동해가도를 따라 양양, 거진, 장전, 통천을 점령하며 진격했고, 10월 10일 완강히 저항하는 적을 물리치고 원산 시가지를 점령했다. 연대는 원산 서북방의 외곽선을 확보 후 경계와 잔적소탕작전을 25일까지 실시했다.
연대는 11월 4일 신포로 이동했다가 9일 흥원으로 이동하여 제1군단사령부 경계임무를 수행했다. 11일 연대는 길주-백암으로 북진하여 25일 백암을 확보하고, 계속 북진을 하는 중에 30일 상급부대의 철수명령이 하달되었다. 12월 10일 연대는 흥남에서 해상철수를 개시하여 부산에 상륙했다.
제3사단은 12월 20일경 홍천으로 이동하여 소양강 변의 관대리 일대에 방어선을 구축했다. 중공군은 12월 31일 전 전선에 걸쳐 제3차 공세를 감행했고, 연대 전방에는 북한군 제2사단이 투입되었다. 적의 집중공격에 맞서 연대 장병들은 분전했으나 진지가 돌파당했고, 1951년 1월 2일 군단 작전명령에 따라 평창으로 철수했다.
국군 철수과정에서의 부대간격을 이용하여 북한군 제2군단이 영월-영주 방향으로 깊숙이 침투했다. 이때 연대는 제7사단에 배속되어 1월 19일부터 24일까지 북한군 제10사단을 물리치고 영월을 탈환한 데 이어 2월 10일까지 홍천 탈환전에 투입되어 분전했으나, 홍천을 탈취하지는 못했다.
2월 5일 미 제10군단과 국군 제3군단이 라운드업 작전을 전개하여 반격을 했고, 이때 사단은 미 제10군단에 배속되어 2월 10일 평창으로 북상하여 횡성 동북방의 제5사단 작전지역을 인수했다. 2월 11일 중공군은 제4차 공세(2월 공세)를 감행했고, 연대는 18일까지 횡성의 섬강-원주-제천 일대로 지연전을 펼치며 중공군 제197사단과 혈전을 벌였다. 이 전투에서 이 일병은 선두에서 용감하게 싸우다 2월 16일 적탄에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범용 일병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그의 위패(08판-3면-227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모시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26-ㅋ-055)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