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범술(李範述)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병
  • 군번 : 0361299
  • 전몰일자 : 19511010

공훈사항

이범술 일병은 전라남도 영광군 대마면에서 출생했다(출생 일자 미상). 그는 6·25전쟁으로 조국이 위기에 처하자 나라를 지키겠다는 일념으로 1950년 9월 초순 제주도 모슬포에 있는 제5훈련소에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받고 제7사단 제3연대에 배치되었다.
이 일병이 부대에 배치될 무렵 전황은 국군과 유엔군이 낙동강방어선에서 북한군의 9월 공세를 저지하고 있었고, 제7사단은 영천전투에서 최후의 공방전을 펼치고 있던 상황이었다. 연대는 경주 무릉산 전투에서 적을 격퇴함으로써 낙동강방어선에서의 최대 위기를 극복하고, 반격의 발판을 마련했다. 인천상륙작전의 성공에 힘입어 연대는 9월 22일 추격작전에 돌입했다. 연대는 경주-안동-문경-충주-장호원을 거쳐 10월 8일 양문리에서 38도선을 돌파했고, 김화-평강-곡산-평양 북방-개천을 거쳐 11월 1일 군우리까지 진출했다.
연대는 평안남도 개천 동북방의 비호산에서 3일부터 7일까지 중공군 제112사단과 치열한 공방전을 벌인 끝에 적을 격퇴했다. 연대는 묘향산 남방에서 중공군 제38군과 제42군의 강력한 반격을 받고 악전고투 끝에 27일 순천 일대로 철수했고, 이후 승호리-신계-시변리-연천을 거쳐 12월 15일 춘천으로 단계적으로 철수하여 38도선 일대에 방어진지를 편성했다.
12월 31일 중공군은 제3차 공세를 시작했고, 연대는 철수하여 1951년 1월 8일 영월 북서방에 배치되었다. 이후 5월까지 연대는 영월-평창-하진부리-인제 축선에서 공산군과 공방전을 벌였다. 북한군의 5월 공세를 속사리-하진부리-대관령 일대에서 저지한 유엔군은 공세로 전환했다. 이때 연대는 6월 7일부터 12일까지 양구 서북방의 군량현 일대에서 적과 치열한 교전 끝에 ‘신 캔자스선’ 상의 마석봉-504고지-757고지를 잇는 선을 확보했다.
미 제8군은 전체 방어선 가운데 남으로 만곡부를 이루고 있는 양구 일대의 전선을 밀어 올리도록 미 제10군단에 임무를 부여했다. 이에 따라 연대는 8월 9일 양구 북방의 백석산 남쪽의 917고지를 공격하여 9월 2일 이를 확보하고, 이어 9월 15일 883고지-892고지 전투에 투입되어 18일 883고지를 확보했다. 연대는 9월 24일 백석산을 목표로 공격을 개시했으나 적의 완강한 저항에 부딪혀 실패했다. 이 전투에서 이 일병은 앞장서서 용감하게 싸우다 중상을 입고 후송되었으나, 10월 10일 끝내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범술 일병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전쟁기념관 전사자 명비(053-ㄴ-073)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