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범술(李範述)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병
  • 군번 : 0361224
  • 전몰일자 : 19500813

공훈사항

이범술 일병은 전라북도 전수시 관선동에서 출생했다(출생 일자 미상). 그는 대한민국 정부가 1948년에 수립되었으나 정치·사회적으로 매우 혼란스러웠고, 북한군이 도발을 일삼던 1950년 1월 초, 경기도 포천의 제9연대로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수료한 후 예하 대대에 배치되었다.
제9연대는 사단의 우측 부대로서 포천 정면을 담당하고 있었다. 제7사단은 1950년 6월 25일 새벽에 북한군 제3, 제4사단, 제105전차여단으로부터 기습적인 공격을 받았다. 제9연대는 금오리 일대에서 교육훈련을 하다가 연대장 명령에 의거 신속히 천주산(434고지)-가랑산(350고지) 간의 주방어진지를 점령했다. 북한군 선두 전차 8대는 6월 25일 아침부터 아군의 보병화력이나 105mm 포병사격에도 끄덕하지 않고 아군 방어진지는 그대로 두고 포천 방향으로 직행하여 오전 11시에 포천을 점령했다. 뒤이어 오후 4시에 적 보병부대가 포천을 점령했다.
이범술 일병이 소속된 제2대대는 38도선 경계근무 중 적의 공격을 받았다. 대대 장병들은 최선을 다해 방어에 임했으나, 연대와 통신마저 단절된 상황에서 오후 2시경에 경계진지에서 철수를 시작했다. 이후 4시경에 태릉으로 집결하여 육사교장의 지휘로 불암산 동남쪽 210고지를 점령했다. 이어 6월 28일 새벽에 한강교가 폭파된 상황에서 광나루로 한강을 건너 안양천 남쪽 고지에 진지를 편성했다. 이곳에서 7월 4일까지 적의 공격을 지연시키다가 수원으로 철수했다. 이후 7월 5일 평택에서 부대를 재편성할 때에 제9연대는 해체되고, 그는 수도사단 제1연대에 편입되었다.
이범술 일병이 소속된 제1연대는 7월 6일 진천으로 이동하여 적의 진출을 지연시키고, 7월 28일에 긴급히 안동으로 이동했다. 이곳에서 국군 제8사단의 안동 철수를 엄호하고, 8월 1일에 길안 방면으로 이동했다가 8월 5일부터 시작된 북한군의 8월 공세에 밀려 의성으로 철수했다. 북한군 제12사단이 8월 9일 기계-안강 지역을 점령하자, 제1연대 장병들은 8월 12일에 안강 지역으로 긴급히 투입되어 치열한 전투로 적의 진출을 저지했다. 그는 8월 13일 안강전투에서 용감하게 싸우다가 적의 총탄에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범술 일병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그의 위패(21판-8면-186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모시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72-ㄹ-042)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