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범순(李範淳)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병
  • 군번 : 0198100
  • 전몰일자 : 19510910

공훈사항

이범순 일병은 황해북도 서흥군 서흥면에서 출생했다(출생 일자 미상). 그는 6·25전쟁 당시 국군과 유엔군이 중공군의 공세로 38도선 일대에서 일진일퇴를 거듭하던 1951년 3월 15일, 제주도 모슬포의 육군 제1훈련소에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수료한 후 제5사단 제27연대로 배치되었다.
이범순 일병이 부대에 배치될 무렵 전황은 국군과 유엔군이 캔자스(Kansas)선(임진강-연천-화천저수지-양양을 잇는 선)과 그 북방에서 중공군 및 북한군과 공방전을 벌이고 있던 상황이었다. 제5사단은 1951년 4월 초부터 20일간의 소양강-인제 지역 전투로 부대정비를 마친 후 美 제10군단에 배속되었다.
사단은 5월 7일에 한석산 좌측에서 소양강 남쪽의 부평리-청구리 일대를 목표로 공격하여 논리 북쪽의 매봉-상수내리를 연하는 선에 진지를 점령했다. 이어서 사단은 5월 16일부터 중공군의 공격(일명 5월 공세)을 받고 5월 19일까지 부대가 포위되어 위기를 맞았다. 그러나 사단은 포위망을 탈출, 재집결 후 새로운 진지를 점령하는 형태로 계속해서 격전을 치르면서, 홍천 부근 어론리 일대에 새로운 방어진지를 구축하여 중공군의 종심 기동을 저지했다.
그 후 제5사단은 5월 29일부로 美 제1군단에 배속 전환되면서 소양강 동쪽에 배치되어, 원통 북방 서화리 일대의 후덕리-981고지-산두곡산(1,019고지)을 연하는 新캔자스선을 향해 공격작전을 펼치게 되었다. 이에 이범순 일병이 소속된 제27연대는 6월 4일에 사단의 좌전방부대로서 서화리-원통 간 도로 우측의 명당산-피양동-서화리-987고지 방향으로 공격했다. 연대는 명당산에서 연이틀 계속해서 적의 선제 기습공격을 받았으나 치열한 격전 끝에 이를 격퇴시켰고, 계속해서 명당산 북쪽으로 연결된 752고지 및 851고지를 공격하여 6월 17일에 新캔자스선을 점령했다. 7월 말까지 연대는 新캔자스선 상에서 진지강화와 재편성을 실시하며 적과 대치 중에 있었다.
이때 제5사단은 다시 美 제10군단에 배속되었다. 군단이 남으로 만곡부를 이루는 전선을 북으로 밀어 올리기 위해 해안분지(펀치볼) 확보작전을 실시할 즈음, 사단은 9월 5일 제27연대를 주력으로 공격을 개시하여 가칠봉 북쪽의 1,211고지를 9월 9일 최초 점령하였으나 적 역습으로 가칠봉으로 철수했다. 이범순 일병은 9월 10일 분대원과 함께 1,211고지를 점령 후 진지강화 중 적 포탄에 맞아 안타깝게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범순 일병의 공적과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하여 그의 유해(11묘역-1판-914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안장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33-ㅎ-072)에 이름을 새겨, 그의 나라 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