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범순(李範順)

  • 군별 : 육군
  • 계급 : 이등상사
  • 군번 : 1802214
  • 전몰일자 : 19511117

공훈사항

이범순 이등상사는 1928년 2월 2일 강원도에서 출생했다. 그는 1947년 6월 1일 제8연대에 입대하여 복무하다 제18연대로 전속되었다. 제18연대는 1949년 8월 10일부로 제2사단에서 수도경비사령부로 예속이 변경되었다. 이 이등상사는 1949년 6월부터 1950년 2월까지 옹진지구전투사령부에 파견되어 38도선 상의 은파산 일대에서 북한군과 공방전을 벌였다.
6·25전쟁이 발발하자 제18연대는 의정부 북방의 덕정, 한강방어선의 김포비행장, 영등포, 안양 일대에서 혈전을 벌이면서 적의 공격을 지연했다. 7월 5일 연대는 제1, 제8연대와 함께 수도사단(수도경비사령부 개칭) 예하부대로 재편되었다. 이후 연대는 진천-청주-남일 일대에서 지연전을 펼쳤고, 8월 3일부터 낙동강방어선의 청송, 의성, 기계전투에 투입되어 북한군 제12사단을 격퇴했다.
인천상륙작전 성공을 계기로 국군은 9월 22일 추격작전으로 전환했고, 연대는 10월 1일 38도선을 넘어 북진하여 10월 10일 원산을, 11월 25일 청진을 점령한 후 부령까지 진출하여 한·중 국경선을 목전에 두었으나, 30일 상급부대 명령에 따라 흥남으로 철수했다. 12월 10일 연대는 제3사단과 함께 흥남에서 해상 철수하여 부산에 상륙했고, 25일부로 제3사단으로 예속이 전환되었다.
제3사단은 12월 20일경 홍천으로 이동하여 소양강 변의 관대리 일대에 방어선을 구축했다. 연대는 평창, 횡성, 현리, 인제 일대를 오르내리며 1951년 5월까지 중공군 제3~6차 공세에 맞서 공방전을 펼쳤다. 현리전투 결과로 5월 25일 제3군단이 해체되고, 제3사단은 제1군단으로 배속 전환되어 양양 서쪽의 마산리 일대에 배치되어 제1군단의 후방지역작전을 담당했다.
사단은 10월 20일부로 미 제10군단으로 배속이 전환되었고, 양구 동북방 가칠봉으로 이동하여 제5사단의 진지를 인수했다. 사단은 휴전회담을 지원하고 전선의 요철을 정리할 목적으로 가칠봉 북서방의 1,211고지를 탈취하기 위해 공격을 명령했다. 이에 연대는 10월 27일부터 31일까지 북한군 제13·2사단과 백병전을 전개하며 공방전을 펼쳤지만 결국 이 고지를 확보하는 데 실패했다. 이후 북한군은 제3사단이 탈취한 전진기지를 탈환하기 위해 계속해서 역습을 실시했으나, 사단은 이를 물리치고 고지를 지켜냈다. 이 전투에서 이 이등상사는 소대원을 이끌고 싸우다 11월 17일 적탄에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범순 이등상사의 혁혁한 전공과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화랑무공훈장(훈기번호 25157 육)을 추서하고, 전쟁기념관 전사자 명비(028-ㅁ-005)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