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범수(李範洙)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병
  • 군번 : 0324787
  • 전몰일자 : 19520714

공훈사항

이범수 일병은 경기도 화성군 남양면에서 출생하였다(출생 일자 미상). 그는 북한의 기습남침으로 조국이 위기에 처하자 1952년 1월 초순 육군에 입대하여 기초군사교육을 수료한 후 수도사단에 배치되었다.
이범수 일병이 전선에 투입될 무렵 전선 상황은 1951년 8월부터 본격화되기 시작한 고지 쟁탈전은 1952년에 접어들면서 더욱 정교해지고, 그 강도는 더욱 높아졌다. 따라서 더욱 많은 사상자가 발생할 수밖에 없었고 그러므로 더욱 치열한 고지 쟁탈전을 수행할 수밖에 없었다.
1952년 초반까지 쌍방 간에 합의되었던 임시휴전선이 백지화됨에 따라 회담의 추이를 지켜보는 가운데 전선은 소강상태가 계속되고 있었다. 이범수 일병은 호남지구 공비토벌 작전에 투입되었다. 당시 수도사단은 후방지역 공비들의 수가 급속도로 증가하여 후방치안의 확보가 점차 어려워지게 됨에 따라 이들을 소탕하기 위하여 1952년 2월부터 백아산, 모후산, 조계산 지구에 대한 소탕 작전과 반복 수색을 전개하였다. 이어 5월에는 금성-북한강 동안까지의 전선을 인수하여 동부전선을 방어하고 있었다. 이 일병은 연대병력과 화천 일대 금성천 북안 일대에서 정찰 활동을 수행하던 중 북한군과 마주치게 되어 교전을 벌여 중공군 여러 명을 사살하는 수훈을 세웠다.
이범수 일병과 연대병력은 1952년 7월 8일 지형능선을 공격해 점령했으나 북한군의 역습을 받아 물러났다. 전선은 수도고지와 지형능선에서 각각 한 차례씩 일진일퇴의 공방전이 전개되었다. 하나의 고지를 점령하기 위해 무수한 인명이 희생되는 소모전이 계속되었다.
그는 전투를 수행하는 동안 삶과 죽음의 감각을 느낄 겨를조차 없었다. 생과 사의 갈림길에서도 죽음의 위협을 두려워하지 않고 오직 조국을 우리 손으로 지켜야 한다는 일념 하나로 최후까지 용감하게 싸웠던 이범수 일병은 1952년 7월 14일 북한군의 공격에 대비해 진지를 보강하면서 전방으로 정찰을 수행하던 중 북한군의 총탄을 맞고 장렬히 전사하였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범수 일병의 혁혁한 전공을 기리기 위해 위패(09판-4면-106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모셔 살신보국정신을 기리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명비(006-ㄴ-019)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