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범송(李範松)

  • 군별 : 육군
  • 계급 : 중위
  • 군번 : 24567
  • 전몰일자 : 19530521

공훈사항

이범송 중위는 경상남도 동래군 봉래동에서 출생했다(출생 일자 미상). 그는 6·25전쟁으로 조국이 위기에 처하자 나라와 자유를 지키고자 일어섰다. 이 중위는 장교가 되고자 육군보병학교에 보병사관후보생으로 입교하여 소정의 교육훈련을 받고 1951년 8월 18일 육군 소위로 임관했다. 이 중위는 제주도 모슬포에 있는 제1훈련소에서 교관으로 신병훈련에 전념하다, 제58경보병연대가 창설되자 이 부대의 창설요원으로 전속되었다.
한편, 1951년 7월 10일 최초로 휴전회담이 열리면서 회담이 진행되자, 한·미는 미군 재보충이 어려운 상황과 휴전 후의 한국 국방을 고려하여 1952년 초부터 육군을 10개 사단에서 20개 사단으로 증편하는 계획을 추진했다. 이에 따라 1952년 11월 8일 강원도 양양에서 6개의 경보병연대(제53-제59연대)가 창설되었다. 이 중에서 제57·58·59연대는 제15사단에 잠정 배속되었다가 1953년 1월 1일부로 제1교육여단으로 재편성되었다. 여단은 창설 후부터 2월 8일까지 부대교육훈련(UTC교육)을 실시했다.
2월 9일 제20사단이 창설되면서 제1교육여단은 해체되고, 이들 연대는 제60연대(전 57연대), 제61연대(전 58연대), 제62연대(전 59연대)로 개칭되어 사단 건제부대로 편성되었다. 사단은 창설 후 미 제10군단에 배속되어 인제로 이동 후, 야외교육훈련(FTC교육)을 포함한 교육훈련을 2월 10일부터 5월 14일까지 실시했다.
연대는 교육훈련을 하면서 3월 중순 제7사단에 배속되어 현지 실습을 했다. 연대는 투입 전에 사전 경험을 쌓기 위해 제7사단의 930고지에 투입되었다. 이때 제7사단 전방의 중공군 제33사단이 아군의 전투태세를 시험하기 위해 930고지에 소규모의 침투 부대를 투입했다. 연대는 계속해서 침투하는 적을 무찌른 후 진지를 보강했다.
사단은 5월 15일 제7사단이 담당했던 양구군 방산면 백석산 북방의 1,090고지 일대의 전선을 인수했다. 사단은 제62연대를 좌, 제60연대를 우, 제61연대를 예비로 하여 방어편성을 했다. 제61연대는 진지교대 이후 큰 전투가 없는 가운데 진지를 보강하면서 위력수색, 매복작전 등을 지속했다. 이 중위는 교육훈련과 작전 수행에 솔선수범 앞장서 왔다. 하지만 그는 5월 21일 소대원을 이끌고 적진에 대한 위력수색작전에 앞장서다 적탄에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범송 중위의 혁혁한 전공과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화랑무공훈장(훈기번호 91668 육)을 추서하고, 유해(33묘역-판-1287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모시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77-ㅋ-018)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