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범석(李範錫)

  • 군별 : 육군
  • 계급 : 이등중사
  • 군번 : 1606553
  • 전몰일자 : 19500625(제18연대가 실제 전투에 투입된 6월 26일 전사한 것으로 추정됨)

공훈사항

이범석 이등중사는 경상남도 동래군 신동면에서 출생했다(출생 일자 미상). 그는 광복 후 좌우 대결로 사회 혼란이 계속되고 있던 가운데, 대한민국을 지키고 조국에 헌신하기 위해 1948년 6월경 제3여단 제6연대에 입대했다. 이 이등중사는 동년 11월 20일 경북 포항에서 제18연대가 창설되자 동 연대로 전속되었다.
제18연대는 1949년 6월 20일 창설된 수도경비사령부에 동년 8월 10일 예속 전환되었다. 이 이등중사는 제18연대 장병들과 함께 1949년 9월부터 1950년 1월까지 옹진지구전투사령부에 파견되어 해주 근처의 38도선 상에 위치한 은파산 일대에서 북한군과 공방전을 벌였다.
1950년 6월 25일 6·25전쟁이 발발하자 제18연대(-)는 동일 오후 5시부로 동두천 축선을 방어하고 있던 제7사단에 배속되었다. 동두천 축선에 투입된 북한군 제4사단과 제203전차연대 제3대대는 남침 첫날 국군 제7사단 제1연대가 방어하고 있던 동두천을 함락하고 의정부 방향으로 남진했다. 육군 총참모장은 제7사단장에게 역습을 명령했고, 이에 따라 25일 야간에 출동하여 의정부 북방 녹양동에 숙영하고 있던 제18연대(-)는 26일 아침 봉암리를 목표로 공격을 개시했다. 그러나 기동 중에 하달된 사단장의 명령으로 연대는 덕정 서북쪽의 용암리 일대에 급편방어진지를 편성하고 적의 공격에 대비했다.
오후 2시경 북한군 기계화부대가 남하하자 연대는 수색대와 2.36인치 로켓포반 등으로 구성된 특공대를 조직하여 공격했으나, 적 전차는 파괴되지 않았고 오히려 아군이 적 전차들의 집중 포격을 받아 철수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기계화부대가 통과한 후 적 우마차부대가 남하하자 연대(-)는 이들을 공격하여 12대의 우마차에 실린 전차포탄을 노획하고 적군 12명을 생포하는 전과를 올렸다. 그러나 포천 축선에 투입된 적에 의해 의정부가 함락되어 퇴로가 차단됨으로써 연대는 고양을 거쳐 28일 밤 행주나루터에서 한강을 도하하여 김포로 철수했다. 이 과정에서 이 이등중사는 소대원을 이끌고 솔선수범 앞장서서 적 전차부대에 맞서 용감히 싸웠으나, 안타깝게도 적탄에 맞아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범석 이등중사의 숭고한 희생을 기려 그의 위패(30판-1면-029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모시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22-ㅅ-072)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