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범래(李範來)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병
  • 군번 : 0242493
  • 전몰일자 : 19510720

공훈사항

이범래 일병은 경기도 화성시 안용에서 1923년 5월 8일에 출생하였다. 그는 6·25전쟁으로 조국이 위기에 처하자 나라와 자유를 지키기 위해 분연히 일어섰다. 이 일병은 1951년 1월 21일에 입대한 후 부산에 있는 제2훈련소에서 기초군사훈련을 받고 제8사단 제21연대에 배치되었다.
이 일병이 부대에 전입할 당시, 제8사단은 당시의 혹한과 강설로 진지 구축을 제대로 할 수 없었지만, 적의 주 접근로에 지뢰와 장애물을 설치하여 적의 공격에 대비했다. 제8사단 장병들의 분전에도 불구하고, 좌·우측 전선이 돌파되었기에 강원도 홍천군 방면으로 철수하게 되었다. 이후 제21연대 장병들은 1951년 1월간 홍천군 양덕원리에서 중공군의 공세를 방어했다. 혹한에 접어든 태백산맥의 능선에서 고지전이 전개되었다.
중공군 2월 공세가 1951년 2월 11일부터 전개되었다. 중공군은 이때까지 소수 병력으로만 저항을 시도했다. 그러나 적군은 1951년 2월 12일을 기점으로 대병력을 투입하였고, 아군 전선은 대대적인 포격이 가해져 모든 연대가 포위상태에 들어갔다. 제8사단은 주포리로 지휘소를 옮기며 철수하였고 분전에도 불구하고 막강한 화력 차로 철수하게 되었다.
제8사단은 전력보충 이후, 1951년 4월 3일 호남지구의 공비토벌작전을 위해 전라북도 전주시로 이동했다. 당시 전라도 일대에 지역 좌익 및 북한군 낙오병이 합세하여 공비가 약 3,000여 명에 달했다. 제21연대는 1951년 4월 16일부터 충남 경찰 소속 제18전투경찰대와 함께 충청남도 금산군 대둔산의 공비토벌에 나섰다.
토벌대는 일대의 고지를 차례로 점령해나가고 인근의 민가를 수색하며 거점을 확보했다. 이후 제8사단은 5월 19일 충청북도 제천군으로 이동하여, 미군 제10군단 제3사단의 예비대로 준비태세를 갖추는 한편 후방을 경계하게 되었다. 이 일병은 충청도 일대의 공비 및 북한군 잔존세력을 토벌하다 1951년 7월 20일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범래 일병의 공적과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하여 그의 유해(45묘역-7판-11991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모시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62-ㄲ-035)에 이름을 새겨, 그의 나라 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