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범락(李範絡)

  • 군별 : 육군
  • 계급 : 이등중사
  • 군번 : 8805440
  • 전몰일자 : 19530509

공훈사항

이범락 이등중사는 1933년 8월 20일 충청남도 부여군 충화면에서 출생하였다. 그는 북한의 기습남침으로 조국이 위기에 처하자 1952년 3월 10일 육군에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받은 후 수도사단 기갑연대에 배치되었다.
당시 수도사단은 군단의 전투지경선 조정에 따라 군단의 중앙사단으로서 교암산 동측 765고지-690고지-663고지-북한강 동안 어운리 선을 주저항선으로, 575고지, 지형능선, 수도고지 등에 전초를 운용 중이었다.
1952년 지형능선과 수도고지에 대한 제한공격이 무위로 끝난 후 전선은 8월 초까지 교착상태에 접어들었다. 이범락 이등중사가 소속된 연대는 7월 말부터 제1연대를 예비로 돌리고 제1기갑연대와 제26연대로 주저항선을 정비하여 진지강화에 주력하였다. 이 이등중사와 연대병력은 6일부터 8일까지 수도고지를 놓고 뺏고 빼앗기는 쟁탈전을 수차례 반복하였다. 이와 같이 전선은 7월과 8월 수도고지와 지형능선에서 각각 한 차례씩 일진일퇴의 공방전이 전개되었다.
9월 6일 북한군은 기갑연대 제5중대가 배치된 지형능선과 제6중대가 배치된 575고지에 맹렬한 공격준비사격과 더불어 각각 1개 중대병력으로 공격을 개시하여 왔다. 지형능선상의 전초소대는 오후 9시경 수명의 생존자만이 철수하면서 능선을 북한군에게 내어주고 말았다. 이범락 이등중사와 연대병력은 6차에 걸친 역습에도 불구하고 탈환에 실패하였으나 7차에 걸친 치열한 역습으로 탈환에 성공하였다. 이후 9월 20일까지 수차에 걸친 북한군의 공격을 격퇴하면서 진지를 사수하였다. 이어 10월 6일부터 4일간 수도고지와 지형능선에 재개된 북한군의 공격을 격퇴하였으나, 8일 575고지를 상실한 후 끝내 회복하지 못하였다. 그와 연대병력은 12월 12일 강원도 사창리 북쪽으로 이동하여 미주리선 방어임무에 돌입하였다.
이 이등중사와 연대병력은 1953년 1~2월에는 전력증강과 진지공사에 주력하다가 3월이 되자 중공군의 전초진지 공격에 대하여 제한된 규모이지만 집중적인 공격을 재개하였다. 최후까지 분전하며 북한군의 공격을 방어하던 이범락 이등중사는 1953년 5월 9일 김화 부근 전투에서 푸른 청춘의 꿈을 남겨둔 채 전사하였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범락 이등중사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전쟁기념관의 전사자명비(007-ㅅ-040)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