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범두(李凡斗)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병
  • 군번 : 5302136
  • 전몰일자 : 19500625

공훈사항

이범두 일병은 전라남도 함평군 나산면에서 출생했다(출생 일자 미상). 그는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었음에도 정치·사회적으로 여전히 혼란스러웠던 1948년 11월 하순경, 전남 광주시 평동에 위치한 제20연대로 현지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수료한 후 예하 대대로 배치되었다. 당시 제20연대는 제5사단 예속으로 주둔지를 광주 송정리에 두고 지리산 일대에서 공비토벌작전을 수행하고 있었다.
북한군이 1950년 6월 25일 새벽에 기습적인 침략을 감행하자, 육본본부에서는 “38선 전역에 북한군 침입, 제5사단은 전 병력을 12시까지 용산역에 집결하라”는 명령을 하달했다. 제20연대는 지리산과 백운산 등지에서 공비토벌작전을 중지하고 6월 26일에 송정리역에서 출발하여 27일 오전 7시에 서울에 도착했다. 당시 제5사단장은 제20연대장에게 예하 제1대대 및 3대대, 그리고 제15연대 2대대를 통합 지휘하도록 했다. 6월 28일 새벽에 적 전차가 미아리 고개를 우회 공격함으로써 연대의 방어선은 붕괴되었다.
이후 한강 남쪽으로 철수한 국군은 혼성 제7사단과 제15연대 1, 3대대 및 제1연대, 혼선 9, 20, 25연대로 시흥전투사령부를 편성하여 한강 북쪽의 북한군 4개 보병사단과 1개 전차여단과 대치하며 공방전을 펼쳤다. 이범두 일병이 소속된 제20연대는 한강을 도하하여 한강방어선에서 시흥전투사령부 예하 혼성 제3대대에 소속되어 노량진 부근 수도고지 일대에 배치되었다.
국군이 노량진 수원지 일대의 수도고지와 사육신묘가 있는 39고지 일대에서 방어하고 있었으므로, 북한군은 흑석동과 본동 사이의 강변 능선과 동작동-흑석동 간의 능선 쪽으로 도하하려 했다. 이에 시흥지구사령부로부터 급히 증원된 제1연대와 제9연대의 혼성 1개 대대 및 제20연대와 제25연대 혼성 각 1개 대대, 그리고 제15연대 제3대대로 방어력을 보강했다. 국군은 이 전투에서 미군 폭격기의 지원과 한강이라는 장애물을 이용하여 적의 공격을 저지할 수 있었다.
그러나 7월 4일에 적 전차 4대가 경부선 철교에 대한 보수를 끝내고 한강교를 건너옴으로써 한강방어선마저 붕괴되었다. 이 한강선 방어작전 시 이범두 일병은 6월 28일 수도고지로 돌격하는 북한군과 교전 중 적탄에 맞아 장렬하게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범두 일병의 공적과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하여 위하여 그의 위패(34판-4면-147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설치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79-ㅋ-066)에 그 이름을 새겨, 그의 나라 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전사자 명부에 소속 부대가 육군직할 군기대대는 당시 없는 부대로 서울위패에 기록되어 있는 제20연대로 조정하여 기술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