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범두(李範斗)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병
  • 군번 : 2301795
  • 전몰일자 : 19520626

공훈사항

이범두 일병은 6·25전쟁이 발발한 이후 유엔군과 공산군이 휴전선 일대에서 대치하면서 휴전협상을 진행하던 1951년 11월 중순 육군에 입대하여 간단한 기초군사훈련을 수료한 후 제1사단 제11연대에 배치되었다(출생 일자 및 출생지 미상).
이범두 일병은 두매리 전투에 투입되었다. 이 일병이 소속된 연대는 임진강 북안의 사천-백학산-사미천을 잇는 선에서 중공군 제63군 예하 제188사단과 대치 중이었다. 1952년 1월 13일 오전 8시 105mm 야포 18문과 155mm 야포 6문, 그리고 4.2″ 박격포 8문이 일제히 포문을 열어 두매리고지 일대를 집중 사격하였고 곧이어 전폭기 4대가 측방 엄호포격을 실시하며 적진을 향해 공격을 개시하였으나 탈환작전은 부진하였다. 이 일병과 연대병력은 계속된 돌격로를 개척하면서 적진으로 돌입하여 마침내 중공군을 격파하고 122고지와 148고지를 탈취하는데 성공하였다. 그러나 고지를 탈환한 후 곧 이은 중공군의 역습을 받아 다시 빼앗기는 과정을 반복하였다.
제11연대는 2월에 들어서면서 대규모 공격작전을 보류했으며, 정찰과 기습을 통해 북한군과 계속 접촉을 유지하고 방어진지를 더욱 강화하는 데 집중하였다. 그 외에는 아군의 경계선 및 주 저항선의 요부에서 소규모 공방이 전투 초점이 될 뿐이었다. 연대는 이를 위해 수색정찰대 운용을 강화하였고 제한된 규모의 공세적인 전투정찰도 실시하게 되었다.
이범두 일병이 배치된 임진강 일대에서의 전선은 장마로 인하여 6월까지 비교적 소강상태를 유지하고 있었으며 쌍방은 교착된 전선에서 전투보다는 진지강화와 부대정비에 전력하였으며, 전초와 엄호부대 사이의 빈번한 탐색전과 소규모 전초진지 전투를 통하여 상호 접촉을 유지하였다. 이범두 일병은 장병들과 야간정찰 도중 북한군과 조우하여 소총 사격을 가하며 치열한 공방전을 전개하던 중 적의 총탄을 맞고 1952년 6월 26일 고양대 부근에서 장렬히 전사하였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범두 일병의 혁혁한 전공을 기리기 위해 화랑무공훈장(훈기번호 113788 육)을 추서하고 위패(31판-5면-208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모셔 살신보국정신을 기리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명비(014-ㄴ-050)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